이란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이란 역사상 마지막 군주,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1941년 제위에 올랐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급진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통해 이란을 강대국으로 이끌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백색혁명’이다. 196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 개혁은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농촌 개발, 여성 참정권 확립과 아동결혼 금지, 토지개혁 및 문맹 문제 해결 등을 바탕으로 친미노선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팔라비 왕조는 이를 경계하는 반체제 운동을 탄압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1978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반팔라비 시위가 시작되자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끝내 시민의 승리로 돌아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민중의 투쟁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지만 혁명 직후 수립된 신정부에서 또 다른 독재체제를 이어오며 이슬람 근본주의로 퇴보했다는 평이 따른다.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2012)는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시위대에 인질로 잡힌 미국 대사관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탈출을 시도한 여섯명의 외교관을 구출하기 위해 CIA 전문 요원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가 발빠른 전략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1979년 11월4일부터 444일 동안에 걸쳐 일어난 ‘주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을 각색했다. 비슷한 맥락을 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프리츠 키어시의 감독 데뷔작인 <옥수수밭의 아이들>(1984)은 단순한 호러물로 보이지만 각본가 조지 골드스미스는 영화 전체가 이란 이슬람 혁명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목회자라 부르는 9살 소년 아이작(존 프랭클린)은 동네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살해할 것을 명령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광신도는 이란의 초대 라흐바르(최고 지도자)이자 신정부의 독재자인 루홀라 호메이니와 그의 지지자를, 주인공 버트(피터 호턴)와 비키(린다 해밀턴)는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의 미국인 외교관을 상징한다.
추천작 <페르세폴리스>
감독 · 각본 마르잔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 / OTT 플랫폼 웨이브
마르잔 사트라피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영화. 이란 이슬람 혁명이 주요 배경이며 9살 난 마르잔이 22살이 될 때까지 직접 느끼고 경험한 사회의 모습과 가족, 이웃의 이야기를 전한다. 작품 초반 어린이의 희망찬 시선으로 그려지지만 독재정치와 여성 차별과 탄압 등 무게감 있는 소재가 다뤄진다. 특히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직후의 역동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이후 유럽으로 넘어가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기가 이어지는데 이민자가 겪는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 인종차별이 포함돼 다소 음울한 분위기로 비쳐진다. 자전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이 이야기는 불안한 현실이 개인과 그가 소속된 가족 단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뒤 마르잔 사트라피는 “<페르세폴리스>는 누구나 공감할 정서가 담긴 보편적인 작품이지만 이 상만큼은 이란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