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1979년 12월12일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는 민주화 열기를 억누르고자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일으킨다. 이듬해 4월부터 반민주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규탄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들에 의해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5·18민주화운동은 오명과 누명을 딛고 있다. 모든 시민이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광장에 모였지만 정권과 언론에 의해 폭도, 폭동, 간첩 같은 단어를 뒤집어쓰며 지역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채 인권탄압과 민간인 학살, 불법 처형과 성범죄에 노출돼야 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과 계엄군이 자행한 대규모 학살의 처참한 그림자를 따라간다. 계엄군의 빗발치는 총탄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죽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짓밟고 도망가야 했던 소녀(이정현)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 갇혀 산다. 군사정권의 폭압이 평범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탄내는지 개인을 통해 거시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기에 주요 메시지에서 다소 벗어난, 불필요한 선정적인 장면이 포함돼 있지만 이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광주가 지닌 슬픔과 분노의 역사를 알린 의의를 지닌다. 5·18민주화운동을 이웃과 시민의 이야기로 넓힌 <화려한 휴가>(2007)는 생생한 고증을 반영해 투쟁의 역사를 담았다.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눈 밑에 치약을 발라주는 선생님의 모습이나 시민들을 수호하려는 성직자의 모습, 밝고 희망적인 가사의 민중가요 등이 당시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 흘러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체코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연주한 것으로 극의 전율을 올린다. 5·18민주화운동 소재로 누적관객수 1200만명을 돌파한 <택시운전사>(2017)는 외국인의 시선을 빌려 당시의 광주를 바라본다. 계엄군으로 고립된 도시를 찾은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와 그를 태운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의 이야기는 너른 대중을 겨냥하는 데 성공했고 독재정권에 굴하지 않은 광주 시민의 정신을 고스란히 전했다.
추천작 <오월의 청춘>
연출 송민엽 각본 이강 /OTT 플랫폼 웨이브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싶은 간호사 명희(고민시)와 대학가요제 수상을 꿈꾸는 희태(이도현). 정의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수련(금새록)과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은 순진무구한 어린이들, 라디오 PD를 꿈꾸는 명랑발랄한 소녀까지. <오월의 청춘>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 평범한 꿈을 품고 있다. 이 당연한 일상이 덜컥 무너져내릴 때, 언제나 예측 가능했던 내일이 짙은 안개로 막막해 보일 때 <오월의 청춘>이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슬픔의 형상이 선명히 드러난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 자유는 무엇을 딛고 있는가. 광주가 품은 지난 시간을 되묻는 질문 앞에서 간악무도한 이미지와 잔상이 빠르게 흘러가지만, <오월의 청춘>은 계엄군의 폭력과 인권탄압 속에서도 시민들이 잃지 않은 고결함과 인간성, 도덕과 희망을 짚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