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최성은), 태희(현우석), 사랑(하서윤)은 학창 시절에 가보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20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떠난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들의 수중엔 98만원뿐, 그마저도 사랑과 시비가 붙은 행인들에게 합의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세 사람은 더 저렴한 곳으로 숙소를 옮기고 쉬는 대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금을 모으기로 한다. 아르바이트는 ‘귤 따기’라는 단순노동에 불과하지만 수민은 일하다 쓰러질 정도로 과하게 몰입하고, 아이돌 시절에도 받지 못한 정산금을 받으며 생경함을 느낀다. 한편 사랑은 제주도에서 자신의 트렁크를 잃어버린 상태다. 짐을 찾기 위해 보관소를 찾은 세 사람은 보관소를 관리하는 소윤(강채윤)과 만나는데, 그는 무명과 다름없던 은퇴 아이돌 ‘러브앤리즈’의 수민과 사랑,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를 한눈에 알아본다. 기껏 잘 쉬기 위해 온 제주도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을 소윤은 새로운 곳으로 인도한다.
장편 <십개월의 미래>, 단편 <얼굴 보니 좋네> 등을 연출한 남궁선 감독의 신작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제작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남궁선 감독은 취재를 통해 K팝 아이돌 시스템의 실태를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꿈을 담보로 회사로부터 착취당한 청년들의 인권에 관해 논한다. 수민, 태희, 사랑의 아이돌 시절을 강조하기보다 아이돌 준비 및 활동 과정이 이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20대 중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점에서 <힘을 낼 시간>은 다수의 젊은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자신을 대입해볼 여지를 안긴다. 제주도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인물들이 자기 내면의 단단함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묘사되는 건 그런 여지를 고려한 결과일지 모른다. 음악과 로케이션이 <힘을 낼 시간>의 톤 앤드 매너에 크게 작용한다. 아이돌이 주인공인 만큼 이들이 흥얼거리는 음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지고 간헐적으로 배치된 노래들 덕에 극의 분위기가 어둡지 않게 유지된다. 여행과 휴식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제주도의 풍광 또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캐스팅도 주목할 만하다. <십개월의 미래>에서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미래’로 분한 최성은 배우가 수민 역으로 남궁선 감독의 영화에 다시 등장했다. 영화 <돌핀> <아이를 위한 아이>,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 <치얼업>의 현우석 배우,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다리미 패밀리> <조립식 가족> 등에서 올해 꾸준히 얼굴을 비춘 하서윤 배우 등 최근 활발히 활약해온 신예들이 태희, 사랑을 연기했다. 소윤 역의 강채윤 배우는 비중에 비해 훨씬 더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리감을 느낄 정도로 깍듯한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세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그의 태도가 극에 경쾌함을 안긴다. 말 그대로 ‘힘을 낼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를 안기는 영화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 한국경쟁 배우상, 한국경쟁 왓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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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판매량을 기준 삼아 ‘망한 아이돌’의 타이틀을 안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러브앤리즈, 파이브 갓 차일드의 노래를 외우는 소윤과 함께 수민, 사랑, 태희는 자신들만의 콘서트를 연다. 타인의 추억이 됐다는 사실이 수민과 사랑, 태희에겐 자신들의 과거를 긍정할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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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의 김민영> 감독 이재은·임지선, 2021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모든 걸 함께하던 민영, 정희, 수산나의 일상이 20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 입시만 보고 달려오던 세 사람은 자신이 택한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미래를 그리게 될 것이다. 20대의 굴곡을 지나는 이들에겐 실패도 경험에 불과하다. 수민, 태희, 사랑이 힘을 내 다음을 기약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