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감독의 <지연의 세상> 피칭 장면. 새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영화계 관계자들로 콘퍼런스 룸은 이미 만석이었다.
“이토록 흥미로운 이야기에 함께하실 분을 찾습니다.” 지난 11월15일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CREATIVE LAB: 글로벌/지역 콘텐츠 및 중/저예산 영화 기획개발 프로그램’(이하 ‘크리에이티브 랩’)의 프로젝트 피칭과 비즈니스 미팅이 개최됐다. 크리에이티브 랩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독립영화제가 경쟁력 있는 창작자 육성을 위해 새롭게 시작한 멘토링 프로젝트로 ‘2024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산업’의 일환이다. 이번 프로젝트 피칭 행사는 지난 5월에 선발된 20명의 신진 창작자가 6개월간 영화산업 전문가 10명과 멘토링을 거쳐 개발한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사전에 참석을 신청한 투자배급사 외에도 제작자, 프로듀서 등 많은 산업 관계자가 현장에 함께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 높은 관심을 표했다. 본격적인 피칭에 앞서 마이크를 잡은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이번 사업을 통해 한국영화의 불꽃이 좀더 반짝이길 바란다”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상식 종료 후 수상자들의 사진 촬영이 있었다.왼쪽부터 우수상 <호모 스킨> 강다연 감독,피칭인기상 <탐정 불여사: 작은 해밀톤의 살인 사건> 이유진 감독, 우수상 <첫 번째 계절> 노희정 감독.
피칭 직후에는 6개월간의 대장정을 축하하는 시상식이 이어졌다. 사업 참여도와 프로젝트 완성도를 고려해 선정한 ‘우수상’ 2편은 <첫 번째 계절>과 <호모 스킨>이었다. 노희정 감독의 <첫 번째 계절>은 친구의 연애를 질투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신체 변화를 낯설게 여기는 15살 소녀의 퀴어 성장 드라마를 다루고 있다. 강다연 감독의 <호모 스킨>은 상반신만 발견된 고인류의 복원 작업을 맡은 인물이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는 미스터리 호러 장르다. 강다연 감독은 “혼자 작업하면서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멘토링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더 좋은 시나리오를 완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현장에 함께한 산업 관계자들이 발표를 듣고 마음에 든 작품에 투표하여 선정된 ‘피칭인기상’은 목욕탕 관리인인 중년 여성 ‘불여사’가 탐정이 된다는 이유진 감독의 코미디 추리물 <탐정 불여사: 작은 해밀톤의 살인 사건>에 돌아갔다.
<마귀>의 허승화 감독이 자신이 구상한 캐릭터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부로 나뉘어 각각 10명씩 진행된 프로젝트 피칭에는 <호모 스킨>(강다연), <첫 번째 계절>(노희정), <과동(過冬): 겨울, 나다>(박찬우), <핸드메이드 하우스>(서예원), <와우>(윤문성), <흑역사의 도시>(이기석), <탐정 불여사: 작은 해밀톤의 살인 사건>(이유진), <말씀>(이준섭), <소복소복>(이지우), <우리는 서로에게>(임정은), <황폐한 집>(정재희), <동충하초>(조예슬), <배드키드>(조혜진), <마른 익사>(조희수), <지연의 세상>(차승원), <착한 예나>(최예린), <자화>(최이다), <비행수업>(한승원), <마귀>(허승화), <맨, 홀>(허현웅) 등 총 20편의 시나리오가 소개됐다. 발표자들은 7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흥미롭게 소개하기 위해 영상, 비주얼 아트,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비즈니스 미팅 때 뵙겠습니다.” 제작자들의 미팅을 독려하는 창작자들의 맺음말에서는 작품을 향한 애정과 호기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미참석 1편을 제외한 19편의 작품이 모두 미팅에 성공했던 첫 타임의 풍경. 작품당 최소 3타임 이상의 미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4시간에 걸친 프로젝트 피칭 직후에 열린 1:1 비즈니스 미팅의 열기는 뜨거웠다. 프로젝트별로 20분씩 최대 7회까지 진행된 미팅은 총 101건이 성사됐다. 피칭을 듣고 관심작이 늘어난 제작사들은 현장 신청을 위해 데스크에 긴 줄을 이루었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성 덕에 독창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다”며 제작사들이 큰 관심을 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미팅이 진행된 콘퍼런스 룸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시계가 주어진 20분의 시간을 분주히 알렸고, 테이블에선 피칭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창작자들의 후일담과 아직 묻지 못했던 제작사의 궁금증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관계자들로부터 작품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듣고, 꾸준히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기회를 새롭게 경험하게 되었다”라는 서예원 감독의 소감처럼 1:1 비즈니스 미팅은 독창적인 이야기를 찾는 제작사와 신진 창작자 모두에게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