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U에는 캠퍼스가 없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닫힌 캠퍼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 맨해튼 남쪽으로 가면, 여기저기에서 깃발이
달린 건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냥 거리에 서 있는 건물들. 별다른 표식도 없고 출입을 막지도 않는다. 그 가식없는 건물들이 바로 NYU다.
당연히 정문도 없다. 자그마한 개선문 같은 것이 서 있는 유니온 스퀘어가 정문을 대신한다. 작은 광장인 유니온 스퀘어에는 학생들과 마약상들이
차별없이 같은 공간에 서 있다. 그러니 특별한 사전지식 없이 거리를 걸어다녀도, 자신이 ‘대학’의 한복판을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자유로움과 개방성. 얼마 전 뉴욕에서 유니온 스퀘어를 갔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읽은 <왕비의 이혼>이란 소설에서는 ‘대학’과 ‘엘리트’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캐묻는다. 사실 뻔한 이야기다. 유럽에서 대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대학은 왕과 교회 누구의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는 ‘성역’이었고, 지역사회의 중심이었다. 지배층에 대한 도전과 비판은 그들
고유의 권한이자 의무였다. 권력의 어떤 폭력과 위협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것. 그게 ‘노동’에서 벗어나 고귀한 ‘학문’의 세계로 뛰어든
자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동시에 자긍심이었고. 물론 당시에도 그게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지식을 파는 장사꾼들은
늘 존재하니까. 하지만 대학의 전통도 여전히 남아 있다. 프랑스 파리의 대학 이름들이 숫자로 이어지는 것도 학교 이름으로 서열을 매기는
권위주의와 싸운 결과이고, ‘지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비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학은 어떨까. 이를테면 개방성. 한국의 대학은 지역사회와 철저히 격리된 섬, 아니 성이다. 서구의 대학은 캠퍼스를 일반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서관에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시민들을 위한 강좌 같은 것들을 수시로 연다. 그 대학을 졸업했건 아니건
마찬가지다. ‘대학’은 지역, 나아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굳게 닫혀 있다. 도서관은 이미 ‘연구’가
아니라, 취업을 위한 독서실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민을 위한 강좌보다는 정치인이나 권력집단을 위한 과정 같은 것들에나 혈안이 돼 있다.
비판정신? 요즘의 대학에도 그런 것이 있던가?
사실 나는 요즘의 대학에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서구의 대학이 이상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학으로 상징되는 아카데미즘이 한국사회에서
융성하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추상적인 것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소시민으로서의
요구다. 이를테면 휴일에 대학 캠퍼스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든가, 책을 찾을 때 자유롭게 대학 도서관을 이용한다든가, 수많은 이른바 ‘아카데미’에서
비싸게 강좌를 듣지 않고 대학의 저렴한 강의를 청강할 수 있다든가 등등. 뭐, 그런 것들을 모든 대학에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국립대학이나 시립대학 등이라도 시민의 것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되지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