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런던의 날씨는 참 신기합니다. 맑은 하늘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풍경이 너무 좋습니다. 어쩌면 제가 좋아했던 그녀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멀리 있을 땐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빗줄기가 보이듯 그녀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1집 <Love Scene>의 여섯 번째 곡 <Sunny Rain>에 덧붙여진 이루마의 글)
“When the love falls in your dream, the time flows like a river in you. When you’re in love, that is the time when the night falls.
But I wish you wait until the morning comes. I’ve finally found you. 11.2001 Yiruma” (2집 <First Love> 에필로그>
‘∼을 이루다’에 약속형 종결어미를 붙인 ‘이루마’. 약속이란 본디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소피스트적 발언을 늘 입에 달고 사는 기자에게, 이루마의 ‘약속’은, 그의 이름에서 풍겨나는 믿음은 충분히 시니컬한 조롱을 늘어놓게 할 수도 있었다. 앨범에 딸린 부클릿 속에서 그는 “슬픔이 지나면 너의 슬픔들도 잊혀지리라”(<Time Forgets>, 2집), “당신도 모르는 누군가가 당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당신 곁으로 다가오리라고 믿으세요”라고 조근조근 설득한다. 단정한 피아노 솔로, 때로 나직한 첼로와 함께 읽어 내려가는 작곡가의 짤막한 코멘트는 그냥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아팠지만, 서투름이 더 아쉬웠던 첫사랑을 겪으면서 알게 됐을, 딱 고만큼만의 사실이 관객의 가슴을 조심스레 치고 들어온다.
‘첫사랑’(2집 제목)의 이미지 그대로 맑고 순수한 얼굴의 이루마를 귀공자 타입이라 섣불리 규정짓긴 힘들다. 단 몇 시간의 인터뷰 중에도 이루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사시킨다. 일단, 이 남자 굉장히 웃기다. 스스로도 잘 웃고, 남도 금세 즐겁게 만들어버린다. 정답만 읊을 줄 알았던 모범생의 입에서 엉뚱한 비어가 튀어나올 때의 황당함과 친근함, 뭐 대충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오아시스>에 나오는 장애인들의 사랑도 그리 무겁게만 받아들여지진 않은 모양. “그냥 평범한 연애라고 생각해요. 조금 아이 같은 사랑이죠. 천진하고, 계산되지 않은.”
6월20일경 발매 예정인 <오아시스>의 이미지 앨범은 한국영화상 최초로 시도되는, O.S.T와는 별도로 영화의 분위기를 미리 짐작게 하고, 설렘을 증폭시킬 역할을 맡은 앨범. 이른바 기능성 앨범이자 감각 앨범인 것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만 읽고, 14곡이나 쓸 수 있던 건 평소에도 그의 가슴과 머릿속에 차고 넘치던 사랑에 대한 단상 때문. “이 앨범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 먹는 맛있는 애피타이저가 됐으면 해요.”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감성만큼은 한국 토종이라는 이 젊은이가 엮어낼, 가슴 아픈 사랑의 전주곡, 진짜 궁금해진다. 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프로필
1978년생·퍼셀 스쿨 졸업·런던대학 킹스칼리지 한국인 최초 입학
현대음악의 거장 해리슨 버트위슬에게 사사
클래식 연주회, 뮤지컬, 독립영화 음악가로 활동중
2002년 프랑스 칸국제음반박람회(MIDEM)에서 ‘코리아 뮤직 나이트’ 행사참가
일본, 홍콩, 대만 등지에 라이선스 계약
KBS 드라마 <겨울연가>에 <When the love falls> 삽입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