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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갔어 오지 않아, <Heartbeat> (2PM, 2009)
복길(칼럼니스트) 2024-10-24

몇번의 무산 끝에 간신히 성사된 ‘트친’(트위터 친구)과의 만남. 나는 그와 SNS상으로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인터넷에서 줄곧 지켜봐왔다며 연신 “신기해요”라는 말을 반복했고, 취향에 맞는 선물을 가져왔다며 내게 2PM 택연의 포토카드를 주었다.

“그럼 고등학교 1학년이신 건가요?” “아니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거죠.” 저녁 식사 후 간단히 술 한잔 마실 것을 생각하며 나간 자리였는데 예상치 못한 트친의 신상 문제로 계획은 빠르게 수정되었다. 우리는 이태원의 피자 가게에 앉아 페퍼로니 피자 한판을 시켜놓고 콜라를 나눠 마시기로 했다. ‘당황스럽지만 절대 당황스러운 티를 내서는 안돼!’ 사회 통념상 나는 청소년인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성인이었으나, 내가 그를 보호하려 드는 순간 그는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나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그때 내가 뭘 했지? 하긴 뭘 해. 허구한 날 귀여니 소설이랑 만화책 보면서 살았지. 나는 언제나 소녀 시절의 내가 부끄럽기만 했다. 나의 침묵이 길어지자 참다 못한 트친이 먼저 물었다. “복길님은 그럼 2PM에 언제 입덕하신 거예요?” 나는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2PM이 데뷔한 건 2009년, 그러니까 트친이 2살일 무렵이었다. 그맘때 여학생들의 교실에는 ‘소몰이 발라드’만 퇴치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제물로 삼겠다는 험악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동방신기가 오랫동안 원톱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라이벌 없이 한 시대의 페이지를 홀로 넘기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슬퍼서 죽을 것만 같은 발라드를 들으며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음악 장르로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있나 싶지만, 오직 나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다면 몇번이고 바보가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인 법이다. 우리는 우리를 타깃으로 만들어진 보이 그룹의 노래를 저항의 도구로 삼으려 했다. 그것을 통해 다른 장르의 음악을 신나게 배척하고, 우리만의 문화를 열렬히 신봉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침내 SM, JYP, YG로 대변되는 세 제작자의 이름으로 ‘천하삼분지계’가 시작되었을 때, 친구들은 지체 없이 각각의 세력에 합류하며 해방감을 표출했다. 그때까지 아이돌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도 그 해방감을 얻기 위해 기꺼이 ‘팬’이 되려 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건 빅뱅이었다. 원타임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에겐 형용하기 힘든 ‘멋’이 있었다. 하지만 촌스러운 나에게 정형화되지 않은 그들의 음악과 스타일은 지나치게 세련된 것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샤이니는 더 힘들었다. 중견 그룹이 된 지금까지도 ‘소년에서 남자가 된’이라는 수식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샤이니의 데뷔 초는 어땠겠는가? 그들은 소년 중의 소년이자 최강 소년, 최후의 소년 보호종으로서 생크추어리 같은 곳에 있어야 마땅했다. 누군가를 지켜줄 여력 따위 없던 그 시절 나에겐 그들의 그런 신성한 존재감은 버겁게만 느껴졌다.

또 한번 아이돌 팬덤에 합류하는 데 실패했다고 느낄 무렵, 우리 사이에 비디오 하나가 공유되었다. 머리를 상투로 대충 묶고 민소매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들이 지하 체육관에서 쉴 새 없이 애크러배틱을 하는 영상이었다. 초점은 나가 있고, 구도도 한참이나 잘못 잡혀 있는 그 엉성한 비디오에서는 ‘멋’이나 ‘미’ 같은 것을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이게 뭐지? 몰라 나도. 그 영상은 순식간에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았지만 우리 중 그들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단번에 캐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 역시 그들을 어색하게 여기는 듯했다. 얘네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남성미’ 같은 표현을 붙이기엔 아직 어리지 않아? ‘섹시돌’은 이상해. ‘섹시 여가수’는 있어도 ‘섹시 남가수’ 같은 건 없잖아. 어쩌지? 흠, 에라 모르겠다, 짐승돌!

‘짐승’이었다. 인간에게는 아주 유구한 모욕인 그것.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붙여서는 안될 타이틀. 그러나 그들은 ‘섹시고릴라’ 박진영의 손에서 탄생한 아이돌이었다. 2PM은 ‘짐승’이란 타이틀을 훈장처럼 달고 근육을 키워 무대를 구르고 상의를 찢으며 포효했다. 나는 왜인지 짐승돌을 한없이 긍정하고 있는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식은땀이 흘렸다. 무대마다 그렇게까지 ‘뭔가’를 보여주려 안달이 난 가수는 그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차력쇼를 보고 나면 딱히 다른 것은 더 기억에 남지 않는 것처럼 (애초에 차력쇼를 보는 사람도 드물다) 그들을 보고 나면 다른 그룹의 노래와 퍼포먼스는 전부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10점 만점에 10점> 같은 노래는 지금 나왔다면 그냥 하루 만에 퇴출되었을 것 같아요.” 2년 주기로 세대가 교체되는 K팝만의 초고속 우주에서 트친이 데뷔 15년차 그룹 2PM에 입덕한 건 일종의 고고학 입문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가 중학생이면 어떻고 고등학생이면 어떻겠는가? 나는 피자 치즈를 주욱 늘어트리며 해맑게 웃는 그 고고학자에게 내가 아는 모든 역사를 말해주고 싶었다. <10점 만점의 10점>이 그때는 왜 가능했는지, <떴다! 그녀>와 <와일드 바니> 그들이 출연한 단 두편의 프로그램이 아이돌 예능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그들의 1집 앨범 《01:59PM》의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론 그들이 7인조에서 6인조가 된 이유는 세상 누구도 모르기에 말해줄 수 없었지만, 때때로 역사는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계속 회자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트친과는 피자집에서 곧바로 헤어졌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착잡한 마음은 흔적 없이 사라진 뒤였다. 분명 헤어질 때쯤에 ‘K팝 같은 거 그만 좋아해라…’ 같은 말을 하려 했는데, 다음에 만나면 나도 포토카드를 주겠다는 말로 배웅했다. ‘고고학’이니 ‘역사 강의’니 했지만 우리 둘에겐 시대를 K팝으로 감각한다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K팝을 들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골몰하던 나는, 그날의 대화 이후 나의 사랑을 역사로 쌓아가는 기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K팝을 ‘숨어 듣는’ 사람이 있다면 모처럼 플레이리스트 화면을 드러낼 것을 권한다. 깊고 습한 곳에 있던 사랑이 햇볕에 바싹 말라 절대 수치심이 될 수 없도록. 중학생 트친이랑 밥먹고 2PM 포토카드 받은 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