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게 즐거워서가 아니다. 단지 진지해지는 게 두려울 뿐이다. 한국영화가 산업화라는 목표를 세운 90년대, 사회는 그 구성원들 모두에게
가벼워지기를 요구했다. ‘80년대를 극복하지 마라, 그냥 잊어라’라는 말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감겨왔다. “풍자냐 죽음이냐”며 피를 토하듯
일갈하던 이들도 무력해졌다. 94년의 흥행작 <투캅스>의 헤드카피는 “웃다 죽어도 좋다”였다. 하긴 예전 영화들은 지나치게 진솔했다. <월하의
공동묘지>의 여인들은 질투와 원한에 사로잡혀 실로 어이없는 행동을 하며 <뽕>의 이대근은 넘치는 남성을 감당못한다. 당대에 공포와 에로티시즘으로
관객의 발길을 끌었던 그 영화들을 지금 다시 본다면 웃음을 참지 못하리라. <자유부인>에서 다시는 남편의 집에 발을 들일 수 없는 그녀의
눈물조차도 익살스런 제스처로 보인다. 그들은 심각했고 그래서 지금 우습다. 반면 90년대 유행을 주도했던 코미디들을 다시 보라. 그들은
웃기려드는데, 진지함을 참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웃을 수 없는가?
웃음은 모더니즘의 징표?
80년대 영화의 모토가 ‘벗겨라’라면 확실히 90년대 영화의 슬로건은 ‘웃겨라’였다. 놀랍게도 이것은 한국영화가 현대화되는 경향과 맞물렸다.
코믹한 표현은 마치 고다르의 점프컷이나 펠리니의 환상처럼 모더니즘의 징표가 됐다. 의식했든 못했든 로맨틱코미디를 만들면서 신진 제작자와
감독들이 내세운 것도 동시대를 따라잡는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혼동이지만 사실과 전혀 다른 건 아니다. 지구 반대편 동세대 선댄스 키드들도
유머와 재치에서 정체된 미학의 출구를 찾았다. 박찬욱의 <삼인조>, 김용태의 <미지왕> 등은 이런 혼란을 틈타 주류영화에 한발을 걸쳤다.
산업과 작가의 동상이몽에 기반해 영화 속 유머는 주가를 높였다. 한쪽에선 검증되지 않은 흥행신화를 확대재생산했고 다른 쪽에선 현대영화의
세련된 화술에 매혹됐다. 둘의 만남은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극적 정점을 이룬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화해를 위해 등장인물들은 기꺼이 광대짓을
한다. 어색하고 심각한 순간을 모면하는 방법으로 웃음보다 나은 대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경비구역JSA>처럼 행복한 만남을 이룬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무렵 개봉한 <공포택시>나 <하면 된다>가 <공동경비구역JSA>와 대별되는 점은 등장인물들의 태도다. 그들은 자신이
진지해질수록 익살스럽다는 사실을 모른다. 한눈에 웃기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행동과 대사와 분장과 표정이 관객을 당황하게 만들고 만다.
웃음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들이 보이는 보편적 반응이기도 하다. <공동경비구역JSA> 역시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는 무의식적 보호본능을
보여준다. 그들은 상대방의 이념과 체제를 비판하는 위험천만한 순간을 실없는 농담으로 극복한다. <반칙왕>도 그런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송강호는 가면을 쓰지 않고는 짝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버지를 마주할 수 없다. 심중에 있던 말이 가면의 주술적 힘을 빌어 입밖으로 흘러나온다.
웃음도 일종의 가면이다. 자신을 감추고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일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은행창구 앞 작은 책상과 상사의 꾸지람일 것이다.
지금 시대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가면을 쓰라고 권유한다. 토크왕을 뽑는 TV프로그램은 웃음에 대한 강박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개인기는
웃음이라는 가면없이 살아남기 힘든 현실에서 유일한 무기가 된다. 박영규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정준에게 싸움을 시키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에피소드도 이런 맥락에선 시대정신의 증거처럼 보인다.
허상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웃음이 강박증이 되는 사회에서 진지한 영화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 어떤 것이냐에 달렸다. 대체로
웃음이라는 가면은 시간에 마모되어 없어진다. 70년대 한국영화의 심각함이 시간에 연소되어 코믹함으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가면 뒤의 얼굴이다. 그 속에 진심이 있을 때 웃음은 병이 아니라 약이 된다. 그 속에 진지한 시선이 있을 때 웃음은 영원한 생명력을
갖는다. 그 속에 예리한 통찰력이 있을 때 웃음은 예술이 된다. 그리하여 가면은, 그 뒤의 감출 얼굴이 있을 때 허상의 유혹에서 벗어난다.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