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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들이 던진 말
2001-03-26

편집장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생각의 실마리는 던질 수는 있다. 일군의 무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본영화 두편을 보고나서 하는 얘기다. 같은 제목으로 번역해놔서 김성수 감독의 <무사>와 자꾸 혼동하게 되는 일본판 <무사>와 <올빼미의 성>이 그것이다.

<무사>는 이미 소개됐다시피 가정과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설국의 철도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멸사봉공의 화신이라 부를 만한 산골역장이 등장하는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닌자영화다. 특수효과와 액션영화적인 요소들을 듬뿍 섞어 ‘현대화’하기는 했지만, 고갱이까지 바뀐 건 아니다. 주인공은 에도 막부의 군주가 호출한 그 아들을 아버지 앞까지 호위해가는 무사다. 아들이 내 친자일까 끊임없이 의심하는 군주가 먼 여행길에 장치해놓은 갖가지 난관을 뚫고 무사 일행은 달려가는데,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왕자, 너만 살아남으면 그건 승리라고 무사는 거듭 선언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식의 승리로 끝난다. 실은 그 왕자가 무사의 아들이었더라는 복선이 깔려 있기는 했지만, 절대적 충성이 내 속에 석연치 않은 침전물을 남겼다. 전쟁으로 백성이 다 죽고나면, ‘천황’이 무슨 소용이랴. 일본 패전 직후 발행된 낡은 <아사히 포토>의 기사 한줄이 떠올랐다. 그 책은 천황을 위한 거대한 지하사령부 대본영에 관한 특집판이었다. 한국에서 끌려간 수많은 이들이 그걸 건설하느라 희생됐던 곳. <무사>는 전체를 위한 하나의 희생을 찬미한다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던 <철도원>의 해설을 내게 해줬다.

<올빼미의 성>은 <무사>와 출발점이 다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다. 주인공은 <무사>의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암살청부를 받는다. 주인공의 칼날 앞에서, 도요토미는 말한다. 조선출병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했을 일. 그걸 거절했으면 출병을 원하는 세력들이 나를 남겨두었을까. 주인공은 권력의 실체가 참 초라하다, 그런 발견과 함께 칼을 거두고 돌아선다. <무사>만큼 외곬으로는 아니라지만, <올빼미의 성>의 허무주의 역시 석연치 않다. ‘권력은 무상한 것’이라며 그들의 권력행사까지 웃고 돌아설 때, 과오를 엄정하게 분석·심판하지 않을 때, 미래의 과오가 준비되는 것 아닌가. 도요토미의 자리에 히로히토를 대입해도 좋고, 임진왜란에 광주를 대입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