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맹랑하다. 춤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뜸 “말은 변명일 뿐”이라고 선수를 친다. 언어의 자리를 몸짓이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슬플 때,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 ‘나 지금 우울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춤으로써 슬픈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솔직했다”고 말하는 여자. 강한 동조감을 누르고 사연을 청해 듣는다. 자연스레 웨이브진 파마머리, 뮤지컬하는 사람답게 약간은 진한 화장을 한 강옥순(34)씨는 공격적이다 싶을 만큼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지만, 그 속에 놀랄 만큼의 조용함과 소극성 또한 갈무리한 채다.
고등학교 입학은 그런 고요함 속에 꿈틀대던 내밀한 몸짓을 밖으로 이끌어낸 첫 계기였다. 수줍음 많던 소녀는, 자신의 그런 성격이 싫어 스스로를 춤반에 밀어넣었고, 그것은 숨어 있던 ‘끼’와 ‘의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첫발이 됐단다. 그러나 그런 기쁨에의 발견도 잠시, 무용과 상관없는 학과로 진학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예전의 그녀로 돌아가는 듯했다. 언저리를 맴돌던 대학생활을 진작에 그만두고, 재즈와 한국무용, 발레를 배우면서, 그녀는 ‘이제 살겠다’ 했다. 자신감과 실력이 팍팍 붙을 즈음, 호주와 뉴욕 컴퍼니에서 연수받을 기회가 생겼고, 경험까지 불리고 나자 비로소 실력을 발휘할 차례가 왔다. KBS ‘젊음의 행진’이라는 쇼 프로그램에서 전문 백댄서팀 ‘짝꿍’으로 활약을 시작한 것이다. 그룹 ‘소방차’의 정원관도 ‘짝꿍’의 일원이었을 만큼 인지도와 실력면에서 인정받는 팀이었다.
당시 MC를 봤던 송승환이, 90년대 초 문화흐름의 하나였던 비언어극인 <난타>를, 미국 유학 뒤 내놓을 땐 초창기 멤버로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초기엔 많은 오해들이 있었어요. 영국의 스톰프(Stomp)와 호주의 탭덕스를 따라한 것이 아니냐는 거죠. 속상했지만, 무턱대고 부정하기보단 난타만의 리듬을 알리는 것이 먼저였어요. 지금은 그런 말이 쑥 들어갔잖아요.” 짝꿍 이후 다시 MBC 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그녀는 뮤지컬 배우로 거듭난다. 그러던 중 <꽃을 든 남자>(1997)와 <짱>(1998)으로 영화와도 조우하는데, 특히 <짱>은 난타의 경험을 그대로 살린 작품.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리와 리듬을 부여하여 관객의 가슴을 울릴 만한, 그루브한 교무실 난타장면을 연출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무려 8개월간 배우들의 댄스교습에 매달린 만큼, 애착과 아쉬움이 짬뽕된 작품이다. 80년대 디스코를 완벽히 재현하려는 의지로, 종일 홍익대 근처 올드록카페에서 ‘죽순이’ 노릇을 하며, 40대들의 ‘진짜’ 디스코를 엿보기도. 열심히 안무한 장면이 상당 부분 잘려 아쉽기도 하다지만, 일선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그녀로선 얻은 게 더 크다. 카메라를 염두에 둔 동작 연출에 확실한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손홍주 [email protected]
프로필
1969년생·호주, 뉴욕 컴퍼니에서 재즈 전공
KBS와 MBC 무용단으로 활약
<꽃을 든 남자>(1997), <짱>(1998),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안무지도
현재 대학 출강 및 뮤지컬 안무가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