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er Coaster> (청하, 2018)
청하의 <Roller Coaster>를 들을 때 나는 언제나 B를 떠올린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만난 B는 PC방 야간 아르바이트 동료였다. 빈자리가 도통 나질 않는 대학가 인기 PC방에서 나는 청소와 고객 응대를 맡았고, B는 간편식품을 조리하고 배달하는 것을 담당했다. 기억 속 B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일찍 졸업하고 싶어서 계절학기를 듣는다던 그는 편의점, PC방, 교습학원 보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친구들의 펑크난 아르바이트를 메꿔주는 만능 대타로도 활약했다.
그래서 B의 무단결근은 큰 사건이었다. PC방 사장은 B가 일하는 1년 동안 단 한번도 연락 없이 잠수를 탄 적이 없었다고 몇 차례나 반복해서 말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B가 걱정되는 건 사장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일전에 딱 한번 가본 적 있는 B의 집을 찾아갔다. B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인종이 없는 쇠문을 노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갑자기 너무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번 반복하니 내가 피운 소란 때문에 옆집에 살던 사람이 나와서 항의를 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나는 또 한번 비명을 질러 그를 놀라게 했다. 계단에서 B가 나타난 것이었다.
B는 몇 개월간 같이 일하면서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방긋 웃으며 ‘언니!’라고 해야 할 B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띠껍게 바라봤다. 갑자기 화가 난 나는 “그렇게 연락 없이 안 나오면 어떡해! 니 일까지 내가 다 했잖아!”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B는 대꾸 없이 문을 열었고 내게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B는 신발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술 취한 고객이 짜증을 내며 시비를 걸 때도, 환기가 하나도 안되는 창고 안에서 궁상맞게 끼니를 챙길 때도 늘 노래를 흥얼거리던 B가 그날 밤은 내 앞에서 통곡을 했다.
우리는 서로 많은 걸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각자의 사정도 대충 이해하며 일의 고충을 나누는 데에만 모든 우정을 다 썼다.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그도 내게 그걸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B는 울음을 멈추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나 또한 괜찮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골목까지 배웅을 나온 B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데 B가 눈이 퉁퉁 부은 채 말했다. “언니 혹시 내일 롯데월드 같이 갈래요?”
다음날 나는 모든 일정을 미루고 B와 잠실로 향했다. 태어나 한번도 놀이공원을 가본 적 없다던 B는 ‘타고난 놀이공원 플레이어’였다. 기구와 스낵바를 번갈아 다니면서도 한번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천재적 동선 설계자’이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타는 미니 기구부터 롤러코스터까지 거침없이 섭렵한 B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까지 ‘몇번 더 탈 수 있었던 기회를 먹는 데 썼다’고 아쉬워했다. 우리는 환승역인 교대역에서 헤어져야 했다. 먼저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데 B가 중얼거리듯 내게 말했다. “언니 저 이제 죽고 싶을 때마다 ‘후렌치 에볼루션’ 탈 거예요”라고.
‘후렌치 에볼루션’은, 아니 롤러코스터는 대기줄에서 나의 탑승 순서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경험이 시작된다. 저렇게까지 높이 올라간다고? 저 구간에서 저런 속력을 낸다고? 사람들의 비명이 섞인 바람이 귀에 꽂히는 순간부터 뱃속이 간지럽다. 뚱, 땅땅, 뚱, 땅땅, 뚱 땅. 앞에 탄 이용객이 전부 내리고 나의 탑승만을 기다리는 열차가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일정한 경고음을 낸다. 떨리는 마음으로 탑승을 하고 안전벨트를 맨다. 잔잔히 주행하던 열차는 조금씩 상승하다 작은 경사를 타면서 겁을 준다. 그리고 드디어 상승한다. 칙.칙.칙.칙.칙.칙. 뒷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그 진동은 더 크게 느껴진다. 열차가 가장 꼭대기에서 잠시 머물 때 숨을 훅 하고 들이쉰다. 전경을 눈에 채 담을 새도 없이 하강이 시작된다. 긴장감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에 온몸의 맥이 풀린다. 잠시 죽음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열차는 그 순간 다시 상승을 하고 이후 거침없는 속도로 레일을 질주한다.
그러니까 청하의 <Roller Coaster>는 이때 느낀 감정 일체를 고스란히 구현한 음악이다. ‘아-리-멤-버-베리-펄슽타임-인-럽’이라는 구간을 설레는 맘으로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면 ‘어머 이래도 되는 지 싶어’ 하는 고개를 만나고, ‘조금 서두르는 것 같아도 baby’ 하는 가짜 오르막 구간도 만난다. 그러다 열차가 조금씩 느려진다. ‘심장이 훅 내려앉는’, ‘상처받을까 걱정되’는 진짜 오르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 순간은 괜히 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상황인데 어쩔 것이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하.지.만.난.다.던.져.볼.래”를 외친다. 쉿, 하고 잠시 적막이 흐르다 나는 떨어진다. 아찔하고, 위험한 느낌이 든다. 안전벨트를 꼭 안은 나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뒤이어 멈춤 없이 고개를 질주하는 구간. ‘넌 롤러코스터, 오오오’ 하는 멜로디는 여기서 붙은 것이겠구나. 눈앞에 보이는 모든 환상이 ‘꿈이 아니기를’ 바랄 때 열차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 간다. 곡 전반에 깔린 마림바 소리는 그제야 들린다. 열차가 멈추어야 놀이공원 전체에 흐르는 오르골 소리가 들리듯이. ‘롤러코스터.’ 세차게 달린 기억과 상반되는 조금은 허무한 외침으로 곡은 끝난다. 마치 놀이공원을 퇴장하는 아쉬운 기분처럼.
청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청하를 싫어할 순 있다. 하지만 청하의 <Roller Coaster>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이상 반박하지 않길 바란다. 어쨌든 나는 이 노래가 청하를 만나 비로소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 그 이유는 몹시 주관적이다. 청하는 항상 누군가를 유혹하는 순간에 대해 노래하고, 그에 걸맞은 매혹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그렇게 간절한 느낌이 아니다. 뭐랄까… 그건 마치 “안 넘어오는겨? 됐어~ 그럼~ 말어~” 같은 충청도 바이브에 가깝다(청하가 충청도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전혀 애달프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나를 미치게 한다. 확실하게 유혹하지 않고, 뭐 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그 아리송한 마음에 왠지 나를 맡겨도 될 것 같은.
지금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이에게, “롤러코스터를 타보세요!”라고 하면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청하의 <Roller Coaster>를 들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그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 노래가 만드는 수많은 긴장과 그에 대비되는 청하의 아리송한 바이브를 즐겨보라. 고통을 줄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B 역시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때를 추억하고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