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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3년, 공연 실황 영화의 모객은 성공적이었나, 2023 돌아보기 : 연속 기획①
정재현 2023-12-14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스위프트 VS 스코세이지.” 지난 10월23일 영국의 <가디언>이 뽑은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체급도 성별도 연령도 다른 테일러 스위프트와 마틴 스코세이지가 맞붙을 일이 있겠느냐마는 이 둘이 한판 승부를 벌인 곳은 놀랍게도 영화관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가 북미에서 가수의 공연 실황 영화 최초로 1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기록하는 등 흥행 기록을 연일 경신하며, 몇주 뒤에 개봉할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박스오피스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가 한동안 영화 호사가들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공연 실황 영화의 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의 승리였지만, 2023년 극장가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영화와 시네마의 전통을 수호한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자웅을 겨룬 양상은 “뉴 노멀이 도래한 극장과 시네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담론에 불을 지폈다. 스위프트에 이어 출사표를 던진 비욘세의 공연 실황 <비욘세: 르네상스 투어> 또한 전미 박스오피스 순위 1위에 오르며 미국 극장가에서 순항 중이다.

<마이 샤이니 월드>

잠시 시곗바늘을 2020년으로 돌려본다.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집어삼켰다. 당연한 것들이 더는 당연해지지 않자 전세계 모든 산업이 자구책을 도모했다. 영화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극장엔 영화가 있는 것이 마땅했고 영화가 있는 곳엔 관객이 있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관객수가 곧 수익인 극장을 관객이 찾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을 모을 유일한 수단인 영화마저 극장에 부재했다. 극장이 영화관뿐만 아니라 공연장도 뜻하는 단어임을 고려하면, 위 두 문장은 ‘영화’를 ‘연극’, ‘뮤지컬’, ‘콘서트’로 대체하는 순간 팬데믹 당시의 공연계를 묘사하는 문장으로 사용해도 오류가 없다. 그때부터 영화계와 공연계는 ‘서로의 극장’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음향을 통해 허구를 ‘실제’라 믿게 하는 영화의 힘을 빌려, 공연의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공연 실황 영화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2023년, 매달 한두편의 공연 실황 영화가 극장가를 찾았고 심지어 3사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공연 실황 영화를 각자의 극장에서 단독 배급해 자사만의 특수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공연계의 흥행은 공연 실황 영화의 성공을 담보하는가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

결론적으로 올해 한국 극장가에 우후죽순으로 개봉한 공연 실황 영화들은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처럼 기록할 만한 흥행 기록을 세우진 못했다. 2023년 공연 실황 영화의 관객수 또한 관객 집단의 취향 및 수요 변화 양상을 진단하는 유의미한 데이터로 환산하기엔 모수 또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실황 영화는 2023년의 한국영화계를 돌아볼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현상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 최대의 극장 체인 AMC와 계약을 체결해 영화를 내놓았듯, 올해 개봉한 다수의 공연 실황 영화는 멀티플렉스 3사의 단독 배급작이었다. 즉 올해 줄지어 개봉한 공연 실황 영화들은 멀티플렉스 3사가 극장 플랫폼의 다변화를 고찰하던 지난 몇년의 시행착오 끝에 내놓은 산출물이다. 메가박스는 2016년부터 클래식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을 통해 오페라, 관현악단 공연 등의 실황을 큐레이팅 중이다. CGV는 2019년 말부터 영화 이외의 다양한 콘텐츠가 극장에서 보이는 소구력을 확인하고 영화 이외의 영상 대체안을 준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영화계가 멈추자, 당시 TF팀은 얼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아이스콘(ICECON)사업팀이 되었다. CGV 아이스콘사업팀의 공유나 대리는 “팬데믹 이전부터 극장은 공간 플랫폼의 다양화를 위한 콘텐츠 수급을 고민했”던 점과 “극장가가 기존의 극장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 때마다 높은 좌석 점유율 등 일정한 수익성이 보장됐다”는 점이 부서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고 언급했다. 롯데시네마는 국립극장의 여러 레토리를 실황 영화로 개봉시키는 등 공연 영상화 사업을 지속하다 지난해 9월에 “다양한 극장 경험을 원하는 관객들의 수요에 부합하기 위”해 얼터 콘텐츠팀을 신설했다. 얼터 콘텐츠팀 지정민 과장 또한 “영화관에서 상업영화 말고도 얼터 콘텐츠를 소싱하려는 시도는 팬데믹 전부터 존재했다”며 지금의 흐름이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못 박았다.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관객수와 매출액 모두에서 팬데믹 이전의 활기를 찾지 못하는 영화계와 달리, 공연계는 연일 ‘흑자 전환’, ‘부활의 청신호’ 같은 헤드라인이 쏟아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연 실황 영화의 연이은 개봉은 공연계의 흥행과 유의미한 연관성을 지닐까. 공연계의 흥행이 공연 실황 영화의 흥행을 담보할 수 있을까. 관계자들은 이에 관해 비슷한 듯 다른 답을 들려주었다. 메가박스 단독 개봉작 <마이 샤이니 월드>와 디즈니+ 공개작 <제이홉 인 더 박스> 의 홍보를 담당한 홀리가든의 김은주 대표는 “지금의 현상이 공연 실황 영화의 흥행까지 이어지긴 어렵다”고 본다. “제작사 입장에선 이미 콘서트 진행 시 기록 및 송출용 영상을 촬영하기 때문에 공연 실황 영화를 제작하는 데 비용 부담이 크진 않다. 하지만 공연 실황 영화는 확장성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콘서트를 관람하는 관객은 생생한 현장감에서 큰 매력을 느끼는데, 영화는 콘서트의 최고 장점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공연 팬층이 실질적 영화 관객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반면 <아이유 콘서트: 더 골든 아워> <엔시티 네이션: 투 더 월드 인 시네마>의 홍보를 담당한 아워스의 최유리 대표는 공연 실황 영화의 연이은 탄생을 “영화계와 공연계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요약한다. “영화계의 입장에선 요즘처럼 한 영화의 흥행 추이 예측이 어려워진 시점에 공연 실황 영화처럼 팬덤의 비중을 통해 확보 관객을 추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콘텐츠가 반갑다. 또한 제작사의 입장을 고려해봐도 영화관만큼 자사의 아티스트를 피알(PR)하기 쉬운 공간이 없다. 유동인구가 많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아티스트의 얼굴이 걸리고, 대형 전광판에 실황 영화의 예고편이 뜨는 것만큼 호감도와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쉬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을 보러 온 시니어 관객도 전광판 속 아이돌 가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지정민 과장은 “영화의 원천이 되는 공연의 흥행과 공연 실황 영화의 흥행이 비례하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선 빈번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공연 제작사들이 “아티스트 개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연의 비하인드나 백스테이지 영상을 공개하는 간편한 방법 대신 영화의 문법을 경유해 특수성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홍보 방식의 다각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공연 실황 영화의 1차 타깃 관객은 당연히 해당 콘서트의 아티스트, 즉 IP 홀더의 팬덤이다. IP 홀더의 팬덤이 확보 가능 관객수의 실제적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팬덤의 분석은 영화 홍보 전략 수립의 첫 단추다. <미스터트롯: 더 무비>를 시작으로 얼터 콘텐츠 전문 제작, 배급 회사로 선회한 영화사그램의 박상근 대표는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공연 실황 영화의 홍보 마케팅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정의한다. “영화의 개봉 소식이나 세부 내용을 어떻게 홍보할지 힘들게 구상하지 않아도 팬들 사이에서 이미 영화 정보가 자연스럽게 전파된다. 따라서 일반 영화에 비해 마케팅 비용이 적게 든다.” 하지만 공연 실황 영화가 흥행까지 내다보기 위해선 두 트랙을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하나, 팬덤 관객층의 지속적 소비인 N차 관람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 팬덤을 넘어 일반 관객에게까지 관심이 가닿아야 한다. 김은주 대표에 따르면 공연 실황 영화는 “일반 영화처럼 ‘메시지가 좋다’, ‘웰메이드 작품이다’등으로 홍보하는 데 난점이 따르”기 때문에 “팬덤 관객층으로부터 출발한 유료 관람자들의 N차 관람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을 전략으로 내세운다. 최유리 대표는 “팬덤 중심의 작품일수록 상영 경험의 특수성을 통해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크린X 등의 체험형 공간을 통해 내가 아이돌 그룹의 제7의 멤버가 될 수 있”도록 하거나, “소장이 용이한 후가공 포스터, 영화에 담긴 공연의 세트리스트가 적힌 티켓” 등 콘서트에서 판매하는 머천다이즈가 아닌 영화용 굿즈를 새로 제작해 N차 관객들에게 지급하는 것이 그 사례다. 지난 11월 <백지영 콘서트 인 시네마>를 단독 배급했던 지정민 과장은 가수 백지영의 팬덤뿐 아니라 일반 관객을 포섭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쳤다. 얼터 콘텐츠팀은 “30, 40대 여성이 백지영의 음악을 주로 소비할 것이고 50, 60대 여성들이 드라마 O.S.T로 백지영의 음악을 자주 접했을 거란 판단하”에 모녀 관객의 동반 관람 전략을 세웠다. 또한 “영화에 포함된 무대에 ‘엄마’가 생각날 법한 곡을 넣고, 온라인 맘카페나 오프라인 문화센터를 통한 홍보”를 진행했다.

한편 영화가 개봉하면 홍보 스케줄을 마련해두는 것이 익숙한 감독이나 배우와 달리, 가수들은 공연 실황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여 무대 인사나 매체 인터뷰 등의 홍보 스케줄을 소화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홍보사들은 일제히 공연 실황 영화의 홍보를 위해선 기존 상업영화의 홍보 방식과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유리 대표는 “IP 홀더의 입장에서도 이미 진행한 공연에 관해 홍보 멘트를 얹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했지 ‘공연 실황 영화’에 관해 홍보할 말은 지극히 한정적이다”라고 정리했다. 배급사들과 홍보사들은 공통적으로 “아티스트들은 영화를 팬미팅의 일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무상으로 홍보를 도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홍보를 위한 거마비 협의가 아직은 필수인 상황”이라고 전한다. 김은주 대표는 “아티스트 SNS 채널 또한 대부분 매니지먼트 관리하에 유상으로 운영돼 SNS 채널을 통한 홍보 협조에도 소극적이다. 마케팅 선재 제작에 있어서도 가수들의 소속사는 배우들의 소속사보다 훨씬 복잡한 컨펌 과정을 거치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마케팅 선재를 바라보기 때문에 아티스트에게 맞는 홍보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두가 극장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변심한 관객의 마음을 돌릴 방도를 연구 중이다. 공연 실황 영화의 등장이 낳은 몇 가지 결괏값이 변화한 관객의 취향과 이로 인해 흐릿해진 극장의 의미를 얼마나 증명할 수 있을까. 공연 실황 영화는 영화계와 공연계가 각자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내놓은 절충안이다. 극장에 관객을 불러오기 위해서 관객과 무언가를 새로 도모해보기 위해 극장이 먼저 제시한 차선책이며 악수의 손길이다. 게다가 극장은 무조건적으로 관객에게 간청하는 것이 아닌, 시설의 확충과 관람 환경의 다변화를 함께 내세우고 있다. 관객이 변해 극장이 변했다는 힐문에, 극장은 관객이 느끼는 결핍과 불만을 공연 실황 영화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보강할 테니 관객이 다시 마음을 돌리길 바란다고 답한다. 요컨대 지금의 공연 실황 영화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 다원화, 민주화된 취향의 가짓수를 하나하나 거두어 궁극적으로 다시 절대다수의 마음을 휘어잡겠다는 움직임이다. 2023년은 극장이 공연 실황 영화를 통해 본격적인 변화를 선포한 원년이다. 극장이 올해 얻은 수치를 바탕으로 새로 나아갈 길을 찾는다면 올해의 결과는 관객이 어디까지 얼마만큼 반응할지 주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연극 · 뮤지컬 실황은?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

엄밀히 말해 공연 실황 영화의 시작은 팬데믹 중 연극, 뮤지컬의 실황 영화 개봉이었다. EMK뮤지컬컴퍼니와 서울예술단이 각각 <모차르트!>와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유료 온라인 송출을 시작하며, 연극·뮤지컬 제작사들은 다양한 자사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해 판매하고 영화관에 납품했다. 심지어 예술의전당은 10년 전인 2013년부터 ‘SAC on Screen’ 프로젝트를 통해 공연 영상화 사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영상으로 공연을 접한 관객에게 실제 공연장을 찾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연계의 영상화 산업은 놀라운 선순환을 보인다. 또한 주로 서울에서만 장기 상연되는 작품이 전국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되며 지역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오프라인 공연 관람 조건이 불비한 관객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뮤지컬 실황 영화는 OTT로의 진출을 꾀하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국립극단은 시즌별로 온라인 극장을 운영 중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티빙과 웨이브에서, <뮤지컬 베르테르>는 티빙에서,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는 티빙과 웨이브, 왓챠 등에서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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