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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혹한 시대에도 사랑은 힘이 세다, ‘연인’ 김성용 PD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3-12-14

<연인>을 한 문장으로 축약해보면 어떨까. 전란 속에 이어지는 애틋한 사랑. 역사가 기록한 민중의 고통. 전쟁의 상흔과 포로들의 여생. 다양한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지만, 김성용 감독은 ‘쉽게 꺼지지 않는 삶의 의지’를 말했다. 전쟁이라는 극도의 고통과 시련이 쏟아져도 끝까지 살아내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연인>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는 두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한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피어난 작은 민들레처럼, 김성용 감독은 굳건한 생애 의지를 통해 인간다움을 재정의했다.

- 올해 8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3개월 동안 총 21회를 두 파트로 나누어 방영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지난 3개월을 돌아본다면.

=많이 힘들었다. (웃음)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이 따랐다. 그런데 끝나는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게 영광처럼 느껴진다. 이제야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때 좀더 즐길걸. 하지만 그런 부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연인>을 만들지 못했을 것 같다. 정말 마지막까지 분초를 다투며 최선을 다했다.

- 사실 방영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청률이 5회부터 반등하기 시작했으니 처음 2주 동안은 전전긍긍했을 것 같다.

=워낙 작품에 대한 신뢰가 컸다. 배우와 스탭 모두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 1, 2회가 방영되었을 때 전개가 루즈하다는 시청자 의견이 나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초반은 메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병자호란 발발 이전의 조선 분위기나 마을을 소개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느리게 보였던 것 같다. 그때 많이 괴로웠다. 한주 한주가 더디게 느껴지고 빨리 다음편으로 넘어가서 우리 이야기의 진가가 드러나길 바랐다. 하지만 <연인>은 결과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는 구간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필요한 고통이었다고 생각한다.

- 코로나19 동안 OTT와 가까워진 시청자들은 그만큼 강한 자극에 익숙해졌다. 전쟁, 포로 등과 같은 키워드를 들었을 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자극이 있을 테고, 공영방송 드라마로서 드러낼 수 있는 제한선이 있을 텐데 그 간극을 어떻게 조절하려 했나.

=전쟁이 주는 참담함과 엄혹한 현실이 진짜 같을수록 배우들의 연기나 서사적 개연성도 힘을 얻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야만 현실성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먼저 주변 환경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위해 미술적 요소를 섬세하게 살폈다. 역사적 고증에도 공을 들였다. 촬영도 다양한 각도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고, 간접적이지만 참담한 감정이 잘 살게끔 편집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직접적 묘사가 필요한 장면도 있었다. 그럴 때엔 이야기에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고 컷을 최대한 짧게 쓰려고 했다. 인물의 이야기와 감정이 자극적임에도 가려지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출연진이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에서 <이산> 특집을 촬영한 이후 같은 방송국 내의 협업이 오랜만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웃음) 두 프로그램 모두 윈윈 전략을 내세울 수 있었던 기획이었다. 특히 <무한도전>을 사랑한 사람으로서 이전 무도 멤버들과 함께한다는 게 너무 즐거웠다. 배우들의 재원도 많았다. 박진주 배우, 이이경 배우가 베테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많이 편집되었다. 너무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서 균형을 잡기 위해 덜어내야 했다. 아쉬움이 크지만 배우들의 정서는 잘 전달됐다.

- 장현(남궁민)은 매우 냉소적인 사람이다. 결혼은 물론, 남들이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랬던 그가 전쟁 발발 이후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냉소와 무관심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장현의 태도 변화는 어떤 메시지를 건넬 수 있을까.

=장현은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다. 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멋있고 완벽하다. 하지만 장현의 가장 중요한 면모는 바로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탁상공론에 빠져 있을 때, 장현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꿰뚫어낸다. 장현 혼자서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환경이 바뀌기 위해 사람들간에 어떤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건네준다. 세상을 무심함으로 일관하던 사람의 인간적인 태도 변화는 강한 울림을 준다.

- <연인>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오마주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의 어떤 점을 작품 안에 반영하려 했나.

=이육사 시인의 생애를 다룬 <절정> 때부터 황진영 작가 팬이었다. 황 작가님이 조선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영화를 봤다. 그 뒤에 대본을 받아 보니 작가님이 영화로부터 무엇을 좇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뭐랄까. 전쟁이 주는 참담함 속에 생명력 강하게 피어나는 삶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중 가장 크게 빛을 발휘한 인물이 바로 길채(안은진)다. 길채는 시대로부터 지탄받을지언정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돋보인다. 사실 길채와 장현은 닮은 구석이 많다. 시대가 요구하는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지점이나, 침착하게 전쟁 상황을 통찰하는 모습이 상당히 맞닿아 있다. 그래서 길채와 장현의 관계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사람으로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모두 의미가 있다.

- 은애(이다인)와 길채의 관계도 눈에 띈다. 은애는 자신의 연인인 연준(이학주)을 짝사랑하는 길채를 질투하거나 경계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길채를 아껴주고 두 인물이 전쟁통 속에 서로를 연민하는 동병상련의 관계도 섬세하게 묘사된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두 배우가 워낙 가까워졌다. 실제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길채와 은애의 관계에도 그런 애정이 잘 드러났던 것 같다. 길채도 싫은 척하지만 은애를 많이 좋아한다. 은애가 오랑캐로부터 위험에 처했을 때 길채가 오랑캐를 굴러 떨어뜨리고 함께 피를 닦아내는 장면이 있다. 난 그 장면이 그렇게 좋았다. 길채도 은애도 생애 없던 일을 겪으면서, 그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다는 게 무척 좋았다. 서로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명시해주는 것만 같았다.

- 량음 역의 김윤우 배우, 소현세자 역의 김무준 배우, 강빈 역의 전혜원 배우까지 신인배우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이들은 어떤 힘을 가진 배우들이라 생각하나.

=전혜원 배우는 강빈 역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배우다. 생명력 있는 카리스마에 표현력이 뛰어나다. <그 해 우리는>에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김무준 배우는 <검은 태양> 당시 오디션으로 인연이 생겼다. 당시에도 적극적인 태도가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다시 만나니 연기가 일취월장했더라.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던 왕세자가 볼모가 되어 선양에서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처연한 삶을 잘 표현해줬다. 마지막으로 량음은 정말 캐스팅이 어려웠다. 나이도 어려야 하고 감정 연기도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노래까지 잘 불러야 했다. 인물 특성상 따져볼 요소가 너무 많아서 적합한 배우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오디션 현장에서 김윤우 배우를 본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심지어 첫 대면 당시 빡빡머리였는데도 그 자체로 분위기가 좋았다. 늘 열린 태도로 임해서 디렉션을 할수록 심도 있는 감정을 표현해주었다.

- 전란 속의 사랑은 서로 만나기 어려울수록 애틋함이 커진다. 연결되기 쉬운 세상에서 상대의 부재와 연락의 공백은 시청자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리움이 커지기 위해서는 기능적으로 떨어짐이 필요하다.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이런 경우엔 두 남녀주인공이 만나서 교감이 이뤄지고 나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전란 속에서 헤어짐을 반복한 연인이 찰나지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그리움을 키워가는 과정이 드라마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이런 요소가 안정적인 박자를 만들 때 절절함을 키운다. 공백과 결핍, 애틋함과 그리움. 이런 감정이 비교적 흔치 않은 요즘에 더더욱 필요한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 MBC에서 처음으로 드라마 파트제를 실시했다. OTT 플랫폼의 시청 방식을 차용한 이유는.

=<연인>은 처음에 24부작으로 편성돼 있었다. 옛날에는 50부작 이상의 대하 드라마도 많았지만, 요즘엔 워낙 8부작, 12부작이 대부분이라 24부작도 시청자들이 길게 느낀다. 그래서 최근의 시청 패턴을 조사하면서 10부작씩 나누어 파트제를 시행해보기로 했다. 나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방송이 없는 공백 기간 동안 후반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연속성이 중요한 시청자에겐 아쉬울 수 있겠지만, 제작자 입장에선 뒷심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소비 방식을 반영한 다양한 편성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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