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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예술과 문학섹션: 세상의 재구성

“제 멘토링을 들으시면 열에 아홉은 창업을 포기하시게 될 겁니다.”

어쩌다 보니 요즘 팔자에도 없는 멘토링 수업을 하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잡지를 만드는 일도, 사진을 찍는 것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세상을 조립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만큼 유쾌하지 않다.

잡지 전문공간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일론에게 처음 받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잡지 전문공간? 수많은 서점이 책 한권 팔지 못하고 망해가는 처지에 잡지를? 잡지만 다룬다고? 그것도 공간으로? (나는 그가 일론 머스크가 아닐지 의심했다. 선구자 또는 사기꾼. 혹은 둘 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잡지’와 ‘서점’이라는 이 말도 안되는 조합(둘 다 망해간다는 점에서)을 떠올리자마자 헛웃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밥 먹는데 체할 거 같으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일론에게 한 답이다.밥값은 일론이 냈다. 밥 사주는 사람은 누나든 형이든 동생이든 항상 고맙다. 헤어지고 나서 일론에게 한번 더 보자고 연락이 왔다. 고맙습니다. 내가 그에게 남긴 답이다. 몇주 후 일요일. 일론과 한번 더 만났다. 만약 그 자리에서 화성 여행 같은 어설픈 낭만주의나 잡지야말로 콘텐츠계의 유일무이한 구원자라는 같잖은 우상론을 떠들었다면 지큐로 따귀를 날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점잖게 떠날 작정이었다. 이미 서점에서 1년 정도 일하면서 생계를 어설픈 낭만에 거는 것만큼 삶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없고,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세상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거대한 진실을 목도한 뒤였기 때문이다. 의외로 일론은 그 자리에서 멋있게 망하자고 했다. 난 이 말이 꽤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귀싸대기를 날리려 준비해둔 가슴팍 지큐는 잠시 묻어두고 답했다. “같이해봅시다.”

같이하기로는 했지만 통장에 자본금을 넣던 날, 비바람이 몰아쳤고 하늘이 붉었다. 불길했다. 엉겁결에 절대 반지를 손에 쥔 프로도처럼 중얼거렸다. 도망칠까. 아무도 붙잡지 않았지만 끝내 도망치지 못했다. 결국 ATM기 앞에서 한번도 일시불로 써보지 못한 돈을 타행 이체하며 다짐했다. “이 돈이 모두 사라지는 날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일론을 죽이러 가겠다.” 아마 각자 사정은 달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프로도도 비슷한 속내였을 것이다. 장난이 아니구나. 이후로 나는 위아래도 없어졌고 물불도 가리지 않게 됐다. 물론 나만 그러지는 않았다. 프로도도, 샘도 그랬을 것이고, 일론도 그랬다. 왜냐하면 이건 장난이 아니니까.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대의명분? 예술적 교감?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 모두 틀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돈이 없다면 세상을 만들 동력은 금세 사라진다.

세상은 꿈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도, 잡지도, 카페도, 서점도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멘토링 수업을 들은 네명의 참가자 중 세명이 처음에 기획한 사업 모델을 바꾸거나 포기했다. 누군가의 미래를 구했다는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들의 창업을 말린 가장 큰 이유는… 경쟁업체 싹수 제거 같은 중차대한 이유도 있었지만 애정하고 바라는 마음이 지표가 될 때 참혹함을 느끼는 것만큼 별로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좋아요가 몇개 찍히는지, 준비한 프로젝트가 얼마나 팔리는지, 공간을 찾아주는 사람이 몇명인지 객관적으로 집계되는 생계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인생은 여러모로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그건 꽤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팔리지 않고 쌓이는 재고, 매일 같이 쌓이는 박스, 출판사나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 아무도 오지 않는 북토크, 이런 것들을 앞에 두면 막막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건 아무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경우에 그런 것들은 상상에 남겨두는 편이 좀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은 꼭 서점이 아니더라도 많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고, 책에 관심이 없고, 가볼 만한 서점은 이미 서울에 충분히 많고, 생기고 있고, 앞으로 또 생길 것이고, 끊임없이 또 또 생길 것이고… 죽지도 않고 또 또 또 또 생길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회를 얻는 곳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들었던 이유는 세상은 자본과 논리로만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종이잡지클럽을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수많은 사람이 말렸다. “요즘 누가 잡지를 읽는다고.” “미용실 가면 다 읽을 수 있잖아.” 그들의 말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었다. 가끔 한번씩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걱정했고 아껴주었는지 떠올리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비관적인 현실과 이성적인 판단을 뒤로하고 나는 일론과 잡지 전문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죽을 만큼 큰 어려움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반대에도 잡지 전문공간을 만들어놓고 수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일과 꿈을 반대한다. 내가 반대하지 않아도 우리가 만들 세상은 끊임없이 현실과 불화하고 이성과 충돌한다. 하지만 꼭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말이 안된다고 여겨져도 어떤 세계는 작동한다. 그리고 그 세계가 금세 망할지 아닐지는 그만큼의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 단순한 열정을 위해 그만큼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세상인 <종이잡지클럽>은 누군가에겐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여전히 초라하다. 만들어가는 세상의 언어는 늘 빈곤하다.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들은 멋지고 근사하지 않다. 대부분 볼품없고 초라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런데도 나만의 세계를 만들 것인가. 그러기에 나는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그러는 것처럼.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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