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나 감독같이 ‘셀럽’들만 하는 거 아니었나요?” 어느새 소소한 인기 코너로 자리 잡은 ‘LIST’ 지면의 손님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자 몇몇 필자에게서 반가움과 의구심이 뒤섞인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매주 프런트 라인(비평), 디스토피아로부터(칼럼), 에세이 지면을 책임지는 8인의 고정 필자들이 <씨네21>의 셀러브리티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그들의 관심 영역을 사로잡고 있는 5개의 문화·예술 목록을 물었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
유튜브에 젊은 심신이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약간 지친 얼굴로 이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쓸쓸하고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노래다.
에세이스트
건강 문제로 요양을 하고 있어서 사람을 못 만난다. 그래서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됐는데 고명재, 이반지하, 비비언 고닉의 글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이담의 웹툰 <똑 닮은 딸>
이 웹툰을 보고 난 뒤로는 어떤 막장 플롯을 접하더라도 머리와 가슴이 고요하기만 하다. 극을 뒤흔드는 반전보다, 인물에 대한 거리감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작가의 집중력이 더 무섭다.
김옥영의 책 <다큐의 기술>
이 책을 읽고 나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더 재밌어졌다. 연출자 입장에서 쓴 글인데 다큐는 시청에도 연출자의 관점이 작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산
부산은 레이어가 복잡한 도시다. 매년 수십번씩 방문해도 늘 새롭다. 요즘엔 범일동과 부산항에 자주 가는데 그냥 길 위에 서 있기만 해도 좋다.
김소영 작가 <어린이라는 세계> / 디스토피아로부터
너태샤 리온의 드라마 <포커 페이스>
매회 맹렬한 욕망이 생긴다. 날렵한 단편소설을 읽고 싶다는 것과, 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것. 그리고 풀어헤칠 수 있게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것.
송미경, 장선환의 그림책 <나는 흐른다>
잡을 수 없지만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늘, 바람, 햇빛, 반짝이는 물결과 내 안의 많은 ‘나’들. 그림과 글이 서로의 결을 맞추어 흐르는 그림책.
조예은의 소설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사랑스럽고 잔혹하고 무섭고 귀여운 호러 소설. 조예은의 소설은 시간 계산을 잘해서 읽기 시작해야 한다. 끼니를 반납하고 읽게 되니까.
루시의 K팝 <아지랑이>
친한 중학생의 추천으로 알게 된 밴드. 음악이란 이렇게 몸을 채우는 것이었지, 나도 열네살 무렵에 알았지. 그 중학생의 세계에 지금 어떤 선율이 있는지 짐작해본다.
황인찬의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나를 그림 속으로 불러들였다가 문득 액자 밖으로 쫓아낸다. 예를 들면 <봄의 반>. 사랑이란 너무 비참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느린 사랑>.
김병규 영화평론가 / 프런트라인
지하철역
심심하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지하철역에서 내린다. 지난 주말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오는 길에 대곡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독특한 구조물을 봤다. 살면서 또 대곡역에 올 일이 있을까?
MBC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승부>
스스로 바둑을 뒀던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바둑 두는 사람들의 병적인 무던함과 예민함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이 다큐는 ‘바둑 두는 사람’이라는 종족에 관한 짧은 보고서 같다. 스승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이창호 9단과 16살 제자를 상대로 승기를 잡고 슬쩍 웃는 조훈현 9단의 얼굴을 떠올린다.
학교 급식
일주일에 이틀,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중 하루는 급식을 먹는다. 그럴 때면 식단을 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정해진 식단과 다른 음식을 만들고 싶진 않을까? 식단의 만족도는 높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몰래 와서 먹고 싶을 정도로.
폴 오스터의 소설 <뉴욕 3부작>
마음에 남는 마지막 페이지. “나는 공책에서 종잇장을 하나씩 하나씩 찢어 손으로 박박 구긴 다음 플랫폼 옆에 있는 쓰레기통 속으로 떨어뜨렸다. 내가 마지막 장까지 다 찢어냈을 때는 기차가 역에서 막 출발하고 있었다.”
호세 루이스 게린의 영화 <실비아의 도시에서>
사람이 걸어가는 속도가 있다. 그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트램(tram)이 이동한다. 서로 다른 두 속도를 지나치며 영화가 움직인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 프런트 라인
팸플릿들
과거의 기록을 들춰보곤 한다. 최근 연극 동아리 팸플릿에 실린 연출 노트를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다고 쓰다니…. 무모했던 과거와 소심해진 현재가 동시에 부끄럽다.
윤경희의 책 <분더카머>
끝에 도달한 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찬찬히 읽는다. 새로운 규칙의 보물찾기에 투입된 듯 조바심이 인다. 지성과 감성은 물론 몸을 자극하고야 만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백인 추장>
아빠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셨어요? 뒤늦게 그 영화를 찾아보았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갑자기 사라지고 모험은 시작된다. 이 영화를 좋아한 사람의 마음을 오래 상상하고 오해한다.
연애 예능 <하트시그널> 시즌4
시들해진 먹방을 대신할 혼밥 메이트로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길티 플레저가 되어버렸다. 어디든 자꾸만 가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다가 귀차니즘에 굴복하고 만다.
허밍 검색
기억 속에 흐릿해지던 멜로디가 덕분에 선명한 음조와 가사로 살아났다. 바시아의 <Copernicus>와 클라우디오 발리오니의 가 허밍으로 발굴한 노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