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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①
씨네21 취재팀 2023-10-03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한국/2023년/106분/개막작 이우빈

계나(고아성)는 “한국이 싫어서” 혹은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뉴질랜드로 떠난다.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옥 같은 출퇴근길, 남을 디딤돌 삼아 경쟁하는 사람들, 태생적으로 그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흙수저들의 삶. 우리가 익숙하다 못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병폐에서 계나는 탈출을 감행한다. 나름 대기업이라 불리는 직장, 지고지순하게 자신만 바라보는 남자 친구 지명(김우겸), 언제나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의 사랑조차 그의 결심을 막진 못한다. 그렇다고 뉴질랜드가 천국은 아니다. 삶은 어디서든 고되다. 영어는 쉽게 안 늘고 돈 모으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보다는 낫다. 행복을 “춥지 않고 배부른 것”으로 정의한 계나에게 뉴질랜드의 온난함과 술 몇 모금은 충분하고 풍족하다. 계나는 종종 뉴질랜드의 애인, 친구와 함께 광장의 계단이나 잔디에 앉아서 와인을 마신다. 이때 그들을 찍는 영화의 투숏은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행복감과 안정감을 자아낸다. 행복의 정서를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한국의 세태를 방증하는 듯해 애석할 정도다. 장건재 감독은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벌어지는 계나의 삶을 숱한 교차편집으로 이어가되 두 시공간의 감정을 분리하지 않는다. 현재의 계나가 느끼는 정서의 원천을 과거 한국에서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풀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단지 ‘한국이 싫다’라고 볼멘소리하는 한 젊은이의 사념에 그치지 않는다. 왜 한국은 싫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녹야> Green Night

녹야

한슈아이/홍콩, 중국/2023년/92분/갈라 프레젠테이션 김소희 영화평론가

인천항 검색대 직원 진샤(판빙빙)는 근무하던 중 초록 머리를 한 별난 여자(이주영)와 엮인다. 둘은 분명 처음 만났지만 여자는 마치 원래 알던 사이처럼 진샤를 거침없이 대한다. 두 사람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며 도망자처럼 인천의 밤거리를 유영하지만, 정작 이들을 쫓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사건이나 인물을 지나갈 뿐, 이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직 판빙빙과 이주영의 만남에 내기를 걸 뿐이다. 비현실적인 여자의 존재는 이방인으로 살아온 진샤의 환상이 만들어낸 다른 영혼처럼 보인다. 대조적인 둘의 만남은 곧 세계의 만남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한국을 낯설게 인식하게 하는 형광의 필터가 되어준다. 이국의 시선에서 본 한국은 시대 배경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낡았지만, 그리 잔혹하진 않다. 사이렌의 붉은색에 여자의 초록색이 더해졌을 때 연상되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처럼, 서로를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는 두 세계의 만남이 결국에는 따스함으로 기억될 영화다.

<괴물> Monster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2023년/126분/갈라 프레젠테이션 송경원

초등학교 5학년 미나토가 어느 날 사라진다. 한참을 헤맨 끝에 흙투성이가 된 미나토를 발견한 엄마는 미나토의 일탈이 담임 선생의 교육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괴물>은 학교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두고 엄마, 선생님, 아이들의 각기 다른 시선의 3부 구성으로 재구성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이 연상되는 이 영화는 동일한 사건이 시점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파고들며 진실의 껍질을 벗겨나간다. <괴물>은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처럼 어린이의 시점에서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고레에다 영화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면서도 새롭다. 1, 2, 3부의 표현 방식, 정확히는 카메라 시점, 인물의 위치, 동선과 블로킹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솜씨는 거장의 내공을 증명한다. 사카모토 유지의 탄탄한 각본에 배우들의 대체불가한 연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사려 깊은 시선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남긴다. 감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로운 전환이라 할 만하다. 76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일본/2023년/106분/아이콘 김철홍 영화평론가

이것은 영화일까 현실의 기록 영상일까.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협업했던 음악가 에이코 이시바시의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이었다가 장편영화로 진화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때때로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 영화이기 전에 기록 영상이었던 장면과 영화가 되기 위해 찍은 장면을 결합했을 때, 그 화면에 존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매번 영화 만들기에 관한 질문을 던져왔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출한 플롯을 가진 영화다. 도쿄 인근의 숲속 마을에 글램핑 부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고, 이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가 열린다. 홀로 딸을 키우는 타쿠미는 간담회에 참석해 이 계획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영화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 도시를 오가며 분주히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독 특유의 ‘긴 대화’ 신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인간의 것인지 자연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선의 카메라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버무려진, 정갈한 마스터피스다.

<유령들의 초상> Pictures of Ghosts

유령들의 초상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브라질/2023년/93분/아이콘 김철홍 영화평론가

비평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클레베 멘도사 필루는, 2012년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이어 발표한 <아쿠아리우스>와 <바쿠라우>는 칸영화제에 상영되어 멘도사 필루를 브라질을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유령들의 초상>은 감독 자신의 영화 세계에 관한 에세이영화다.

메인 글감은 감독의 고향인 브라질 동북부의 항구도시 헤시피다. 감독은 과거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된 기록 영상과 현재의 영상, 그리고 자신의 단·장편 영화에 담긴 헤시피의 모습을 자유로이 교차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은 자취를 감췄으나, 분명 어딘가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존재하고 있을 ‘유령’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역사가였던 어머니부터 시작해 이웃집 강아지, 여러 편의 영화를 촬영했던 자신의 집과 이제는 상영을 멈춘 시내 영화관까지. 감독은 담백한 내레이션으로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을 향한 찬가를 보낸다. 여러모로 시네필들의 가슴을 울릴만한 요소로 가득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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