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나)는 은퇴 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평범한 삶을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문 앞에 사건을 의뢰하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리아드네 올리버(티나 페이)가 찾아와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둘은 핼러윈 밤에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저택에서 열리는 교령회에 참석한다. 드레이크가 교령회를 의뢰한 이유는 죽은 딸 알리시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령회가 시작되고 수상한 낌새를 느낀 포와로는 벽난로에서 레이놀즈의 조수가 교령회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교령회가 거짓으로 들통난 상황에서 레이놀즈가 앉은 의자가 갑자기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레이놀즈는 죽은 알리시아로 빙의라도 한 듯 아이의 목소리로 드레이크에게 말을 건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베니스의 한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 스릴러 영화다.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핼러윈 파티>가 원작인 이번 영화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에 이어 케네스 브래나가 연출한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에서 주목할 것은 살인이 벌어지는 장소다. 전작에선 열차와 여객선이 주 무대였다면 이번엔 저택이다. 베니스의 풍광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베니스는 CG로 깔끔하게 가공된 이미지로 등장하고 이마저도 설정숏으로만 비추기 때문이다. 실내극에 방점을 둔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사운드다. 점프 스케어 역할을 톡톡히 하는 효과음은 저택의 여러 사물을 활용해 디자인되어 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부서지는 소리, 신경을 거슬리게 증폭된 타자기 타이핑 소리 등 영화 속 사운드는 앞으로 펼쳐질 일련의 살인 사건과 함께 관객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숏의 구도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카메라는 다양한 앵글로 인물들과 내부 공간을 독특하게 담아내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영화의 중심 서사인 살인 사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를 돋운다. 집착과 사랑이란 두개의 키워드로 설명되는 살인 사건은 저택 내에 머무르는 인간들의 욕망으로 점철되면서 얽히고설킨다. 그것을 꿰뚫어보는 명탐정 포와로의 예리한 추리력과 용의자들을 몰아붙이는 카리스마는 스크린을 압도한다. 이외에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이들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특히 짧지만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 심령술사 역의 양자경과 포와로의 수사를 돕고 그와 약간의 티키타카를 통해 극에 재미를 더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역의 티나 페이가 인상 깊다

의사 레슬리(제이미 도넌)의 아들 리오폴드(주드 힐)가 환청을 경험하고 있는 포와로에게 건넨 이 대사는 영화의 끝 무렵에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리오폴드는 자신 역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포와로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포와로는 완강히 부정했던 유령의 존재를 점점 믿게 되며,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CHECK POINT

딸의 죽음, 영매, 베니스라는 촬영 장소까지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쳐다보지 마라>는 니컬러스 뢰그가 연출한 오컬트 장르의 클래식인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실내극의 형태를 보여준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과 달리 <쳐다보지 마라>는 베니스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활용하여 서스펜스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