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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 ‘어파이어’
소은성 2023-09-14

<어파이어>는 바닷가에 위치한, 숲으로 둘러싸인 여름의 휴양지에서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산불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극장의 무대처럼 고립된 이곳에 모인 네명의 청년들은 마주침의 순간들에 직면한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이 서로에게 그랬듯, 바깥의 세계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들이 선택한 고립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다. 외부 세계는 산불의 모습으로 등장하긴 하나 영화 안에 그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진 않는다. 이 형상은 불빛으로 인해 붉게 번진 하늘처럼 네 사람 주변을 아른거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외부는 특정한 공간이기보다 낯선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신인 작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이 낯선 것들에 저항하고, 때로는 그것을 동경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영화는 그러한 레온의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시점에서 그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 경험하는 실패와 배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물론 산불이 <어파이어>에서 무의미한 메타포라는 뜻은 아니다. 산불이 번지고 있다는 설정으로부터 비롯된 외부는 극 중 레온의 말처럼 이 영화의 한 가지 ‘요소’이면서, 또한 그에 이어지는 펠릭스(랭스턴 위벨)의 반박처럼 영화의 ‘테마’로 발전한다.

시야 밖의 존재

레온은 여름휴가차 친구인 펠릭스의 가족이 소유한 별장으로 그와 함께 떠나온다. 그곳에서 펠릭스는 예술학교 진학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계획이고, 이미 한권의 책을 출판한 경력이 있는 작가 레온은 준비 중인 두 번째 소설을 퇴고하려 한다. 하지만 두 친구만 머물게 될 줄 알았던 별장에는 낯선 사람이 한명 도착해 있다. 나디아(파울라 베어)라는 이름의 여자인 것만 알려진 그를 눈앞에서 마주하기 이전에, 레온은 그의 소리를 먼저 듣게 된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밤, 레온을 잠에서 깨운 그 소리는 얇은 벽 너머 이웃한 방을 쓰는 나디아가 파트너와 함께 있음을 암시한다. 보이지 않는 인물의 행위 또는 사건을 암시하면서 외화면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이 소리는, 레온이 별장으로 향하며 숲으로 접어들었을 때 들었던 헬리콥터 소리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영화상에선 헬리콥터 소리가 산불 때문이라고 아직 명시되진 않았으나, 적어도 레온이 바라본 텅 빈 하늘이 실은 비어 있지 않고 그의 시야 바깥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 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영화에서 레온은 프레임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물론 영화 속 모든 인물의 말과 시선이 프레임 바깥을 향한다. 그럼에도 레온의 시점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몇몇 숏들에 관해 짚고 넘어가려 한다. 앞서 언급한 비어 있는 하늘과 이후 등장하는 붉게 물든 하늘 숏을 포함하여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시점숏들 가운데, 레온이 나디아를 처음 본 순간은 영화의 주제가 드러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집 안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 레온의 숏에 이어 붉은색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그러나 얼굴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는 나디아의 모습이 제시된다. 이 숏을 레온의 시점숏이라고 볼 때 나디아는 레온이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그가 위치한 공간은 레온의 자리로부터 비롯된 외부이다. 그 외부 공간은 레온의 숏만 놓여 있을 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디아의 경우처럼 레온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공간과 그 안의 인물들, 사물들이 끊임없이 제시되어야만 성립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외화면의 불안이라 할 수 있다.

외화면의 불안정성

관객에게 외화면으로 주어진 레온의 외부 공간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 그것은 존재한다는 확실함으로 현실적인 것에 포섭된다. 불안을 해소하는 이 메커니즘은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파이어>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디아가 떠난 뒤에 레온은 펠릭스에게 ‘그가 멀리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 진술은 영화 안에서 레온의 입을 거쳐 나온 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진실에 닿아 있다. 그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보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단적으로 그는 산불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에 수반되는 소리를 듣거나, 또는 불빛이 산란하여 붉게 번진 하늘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레온이 보게 되는 타오르는 숲과 불이 붙은 멧돼지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나디아가 그것을 꿈에서 보았느냐고 질문하면서 그 진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붉은 하늘의 이미지는 (산불로 인한 것이라는) 외형상의 리얼리티를 구성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외부에 속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레온의 시선이 닿아 있으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까닭에 그의 시야 바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외화면의 불안을 해소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레온이 바라보는 그의 외부는 모두 붉은 하늘의 이미지에 대한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붉게 물든 하늘만으론 산불이 났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바라본 대상을 완벽히 파악하는 데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어야 했다.

펠릭스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삼은 사진 작업의 주제는 물이다. 하지만 그는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피사체로 삼으려 한다. 그의 뒷모습을 먼저 찍은 뒤에 다시 그의 얼굴을 촬영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레온의 새로운 소설을 검토하기 위해 별장으로 온 편집자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그 작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한장의 사진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로 바다를 찍은 사진이다. 이러한 헬무트의 요구와 함께 <어파이어>의 질문은 특별해진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레온 앞에 카메라를 세우고 그를 촬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가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이외의 것은 알 수 없다. 위치를 바꿔 레온이 서 있던 곳에 카메라를 세워둔다면, 그리고 카메라로 하여금 레온이 바라보던 대상을 향하게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대상이 레온이 바라보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외화면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절대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화면 공간이 갖는 잠정적인 현실성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페촐트의 다른 영화들, <트랜짓>에서 2차 세계대전 시기와 현재의 유럽이 겹쳐진 도시를 배회하는 망명자들의 유령적 형상도, <운디네>에서 신화적 존재를 리얼리티의 자장 안에서 조형해내는 방식에서도, 외화면 공간의 불안정성이 주는 여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어파이어>로 돌아와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레온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그의 실패만을 부각하고 끝나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레온이 낭독했던 새로운 소설, 그리고 바다만을 찍은 한장의 사진에 대한 헬무트의 요구. 불안정한 외화면과 계속해서 닿으려는 인물들의 시도에서 우리는 끝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가능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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