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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설이 된 모험, 아름다운 마침표를 위하여,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송경원 2023-06-30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댓글 시인 제페토는 한줄 문구로 세월의 야속함을 되새긴다. 그 뒤에 댓글을 하나 덧붙여본다면, 야속함은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오래전 영화 속 사랑했던 캐릭터를 계속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은 지금도 스크린 속에서 끊임없이 두근거리는 모험을 펼치는 중이니까. <엠파이어> <토털필름>등 영화 전문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캐릭터’에서 1위를 차지한 ‘인디아나 존스’도 그런 캐릭터 중 한명이다. 1981년 <레이더스>가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뒤 인디아나 존스는 곧 모험의 대명사가 되었다. 당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펙터클 그 이상의 스릴과 유머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재미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상영시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어드벤처의 홍수가 쏟아진다는 점에서 특출났다. 한두번의 하이라이트에만 힘을 쏟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인디아나 존스는 마치 잘 연출된 테마파크처럼 물 흐르듯 어드벤처 시퀀스가 이어졌고, 매 시퀀스에서 선보인 독특한 상상력은 이후 탄생한 수많은 어드벤처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인디아나 존스는 위대한 캐릭터로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전설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느낀 탓이었을까.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1984),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까지 3부작이 완성된 후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이 제작되기까지 19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좀처럼 속편이 나오지 못한 건 여러 복잡한 사정 탓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긴 세월을 건너 돌아온 인디아나를 마주하는 마음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새로운 비전을 선보였지만 사람들은 인디아나 존스의 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빛나는 순간을 영원히 반복할 것 같던 영화 속 캐릭터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나고 마침내 레전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가 돌아왔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지 않은 첫 번째 인디아나 존스이자 해리슨 포드의 마지막 인디아나 존스 영화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모험의 마스터피스의 귀환 앞에 우리는 어떤 스릴과 재미를 마주할 것인가.

인간적인 액션과 유머, 어드벤처 테마파크의 귀환

“난 평생 이걸 찾아 헤맸어.” 성궤, 샹카라의 돌, 성배까지 숱한 유물과 인류사의 기적을 마주한 사나이가 평생을 찾아 헤맨 보물이라니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인디아나 존스를 움직이게 한 ‘운명의 다이얼’은 그 자체로도 특별하지만 인디아나 존스가 이 보물을 다시 찾게 되는 시점이 더욱 중요하다. 영화는 나치 패망이 코앞으로 다가온 2차대전 말미, 1944년부터 문을 연다. 나치들이 부지런히 유물을 빼돌리는 현장에 침투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인디아나 존스는 나치가 유물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침투하여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오프닝, 거대한 규모의 기차 시퀀스는 인디아나 존스다운 액션의 총합이자 지나온 영화들에 대한 존중과 헌사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의 성과 철도역 등 실제 로케이션을 통한 웅장한 비주얼과 디테일한 소품으로 완성된 창의적인 세트는 지켜보는 관객마저 그 시절로 데려간다. 중절모에 채찍을 휘두르는 고고학자는 위르겐 폴러(마스 미켈센) 세력과 정신없는 대결을 벌이면서도 특유의 유머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잊지 않는다. 그렇게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손에 넣은 인디아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수많은 모험의 페이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1969년 맨해튼, 대학교수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인디아나 존스의 하루는 피로와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모험에 정신이 팔린 사이 사랑하는 아내 메리언(캐런 앨런)은 떠났고 학생들은 고고학 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 옆집의 시끄러운 히피와 매일 아침 다투는 지리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고고학 지망생을 자처하는 대녀 헬레나(피비 월러브리지)가 찾아온다. 절친 바질 쇼의 딸인 헬레나는 오래전 아버지가 인디아나 존스에게 맡긴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찾는 중이다. 뒤이어 헬레나를 쫓는 무리가 습격하고 쫓고 쫓기는 와중에 사람까지 죽는다. 이들의 정체는 과거 인디아나 존스에게 다이얼을 빼앗긴 위르겐 폴러와 의 수하들이다. 위르겐 폴러는 나치였던 과거를 숨기고 미국의 우주 계획을 수행 중인 물리학자로 전향한 상태다. 맨해튼 거리의 화려한 퍼레이드를 배경으로 시내를 휘젓는 추격전 끝에 다이얼은 헬레나의 손에 들어가고 인디아나와 위르겐은 각자의 방식으로 헬레나를 쫓아 모로코로 향한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다이얼을 두고 두 세력이 뺏고 뺏기는 가운데 유물에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는, 전형적인 인디아나 존스식의 구성을 취한다. 과거 나치의 유물 수송 기차에서 출발한 영화는 뉴욕의 맨해튼, 모로코의 탕헤르 거리, 그리스의 바다, 시칠리아의 하늘까지 유물이 알려주는 궤적을 따라 다채로운 모험의 장을 여행한다. 유물 수송 기차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무엇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낸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80년대 <인디아나 존스> 3부작이 추구했던 이색적인 문명과 모험을 재현하고자 한다. 인디아나 존스가 펼치는 액션은 빠르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인간적인 동작으로 가득하다. 액션의 물리적인 현실성을 유지하되 애크러배틱한 묘기 대행진 같은 구성은 사실상 스크루볼 코미디에 가깝다. 로케이션 장소마다 빼먹지 않고 진행되는 다양한 종류의 추격 신 역시 인디아나 존스의 전매특허를 그대로 살렸다. 그렇게 15년 만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는 나이 든 인디아나 존스가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름다운 이별을 향한 운명적인 선택

그런 의미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그 자체로 이번 영화가 품고 있는 욕망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발견되어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유물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에 영감을 받은 이번 유물에 대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일종의 시간 나침반으로 추측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시간의 파동을 이용할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의 진가를 처음부터 알아본 건 나치 부활을 꿈꾸는 악당 위르겐 폴러뿐이다. 인디아나 존스에겐 그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대녀 헬레나 역시 처음엔 돈벌이 수단으로 유물을 원했다. 치열한 추격전 과정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이들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젊은 시절의 인디아나에게 그건 수많은 유물 중 하나에 불과했겠지만 되돌리고 싶은 과거가 생긴 사람에게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찾아 헤맬 가치가 있는 유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영원한 모험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꿈꾸는 희망이기도 하다.

세월의 끝자락에 선 인디아나 존스에게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스스로의 욕망을 마주하는 시험과도 같다. 단지 젊음을 되찾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인디아나 존스는 모험가 이전에 고고학자다. 고고학은 시간을 탐색하고 거슬러 올라가 그 끝에서 이야기를 자아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인디아나 존스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사이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우선 3부작에서 많은 유산을 가져와 재현했다. <인디아나 존스>의 시그니처 음악 <Raiders March>를 탄생시킨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비롯하여 1, 2, 3편의 오마주랄 수 있는 요소들은 영화 곳곳에 박혀 있다. 클래식 3부작의 매력 포인트였던 모험, 추격전, 아날로그 액션과 슬립스틱 코미디를 기둥 삼아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보이려 노력한다. 이런 의지를 강력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오프닝 시퀀스다. 디에이징 기술을 이용해 젊은 인디아나 존스의 모습을 되살린 장면은 여러 측면에서 팬들을 자극한다.

물론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우선 캐릭터부터 구성까지 클래식 3부작을 따라잡고자 하지만 전반적으로 뒤처지고 만다. 다채롭게 변주한다고는 하지만 반복되는 추격전 시퀀스는 점점 밋밋해지는 점도 아쉽다. 또한 재현과 오마주를 핵심으로 삼으려다 보니 이번 영화에선 인디아나 존스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동기가 다소 흐릿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말았다. 그 결과 캐릭터간의 관계성도 덩달아 희미해져 결국 피날레의 힘도 약해졌다. 무엇보다 핵심 유물인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이 지닌 상징성을 빼고 나면 유물이 주는 신비감이 다소 옅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마디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과거의 유산에 충실하지만 예전 같은 활력은 부족하다. 이건 야심 차게 준비한 초반 시퀀스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전반적인 속도와 액션의 합이 둔탁하고 느린 게 사실이다. CG로 겉모습을 화려하고 충실하게 재현했지만 특유의 육체성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크고 작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에 대한 아련한 메아리처럼 느껴지는 이번 작품은 적어도 인디아나 존스를 추억하는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사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유지했던 특유의 가벼움을 재현하기엔 너무 묵직하고 진지한 면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캐릭터를 제대로 배웅하는 법을 안다. 어쩌면 인디아나 존스에게 새로운 젊음과 활력을 부여해 영원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전설이니까. 하지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전설이 된 캐릭터를 추앙하되 그에게 세월과 함께 늙어갈 자유, 은퇴할 자유를 부여한다. 이번 영화가 클래식 3부작에 비해 어딘지 모자라고 느리다면, 익숙한데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인디아나 존스, 아니 해리슨 포드의 어깨에 드리워진 세월이란 진실을 목격 중이기 때문이리라. 인디아나 존스도 늙는다는 단순명료한 진실. 팬들은 인디아나, 이 위대한 프랜차이즈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싶지 않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의 이별은 필요하다. 장장 40년 동안 해리슨 포드와 인디아나 존스는 분리 불가능한, 이음동의어의 존재였다.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는 제대로 퇴장할 자격을 충분히 갖췄고, 제임스 맨골드는 장점과 단점 모두 포함하여 솔직하고 후회 없는 이별의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건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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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