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자유시장 입구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성인의 걸음으로도 제법 다리를 올려야만 하는 높이였다. 한낮에 입구에서 계단 위를 바라보면 그곳은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층에는 장터를 뺑 도는 창문 없는 복도가 사각형으로 이어져 있었다. 복도 한면만 해도 길이가 꽤 되었는데 고작 한두개의 전구만 꺼질 듯 희미하게 빛을 품고 있어 전혀 주변을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한쪽 모퉁이에서 다른 쪽 모퉁이를 바라보면 그저 한두개의 흰빛 덩어리만 보일 뿐이었다. 한층 아래는 활기 넘치는 시장의 소리가 들렸지만 한층만 올라서면 이따금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와 전구 곁을 지날 때만 들리는 전기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긴 복도에 여러 개의 문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층을 사이에 둔 소리와 빛의 간극 덕분에 복도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우리는 아주 먼 곳에 오래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더위에 한껏 빨갛게 달아올랐던 두뺨도 어느덧 금세 싸늘해졌다. 그럼 못내 아쉬워 주저하다 계단을 다시 오르곤 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도깨비 집’으로 불리던 그곳을 두세번 돌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가끔 전구 밑에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그럼 우리는 그것이 진짜 귀신이었으면 바라면서도 진짜 귀신이 아니었으면 하는 상반된 오묘한 기대를 품고 한 걸음씩 다가갔다. 긴 복도의 바닥은 두세칸의 미니계단과 함께 이상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걷는 감각이 일상의 것과 사뭇 달라 울렁거렸다. 긴가 민가 하다 인식 범위에 들어서면 역시 짐 더미거나 쓰레기봉투였다. 안심하면서도 싱거운 마음으로 지나쳐가다 멀어지면 꼭 가자미눈으로 돌아보며 물체가 다시 사람의 형태로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역시 저게 진실일지도 몰라’ 생각했다.
하루는 저녁에 시장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호기롭게 혼자 그 계단을 올랐다. 껌껌한 복도 앞에서 금방 심장이 콩알만해져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남자애가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왔다. 남자애도 공포 체험을 하러 온 거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다시 쫓아 올라갔다. 복도를 반쯤 왔을까. 남자애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줄지어 서 있는 문 중 하나를 열었다. 나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어서 와’ 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된장찌개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 텔레비전 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밝은 형광등 불빛 등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쏟아졌다. 남자애는 새침하게 문을 쾅 닫아버리고 나는 복도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깜짝 놀라 정신없이 계단을 뛰쳐 내려갔다. 갑자기 복도에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보다 그 문들이 단순히 방음이 잘된 집들이었다는 것, 고작 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공포 체험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미안하고도 이상한 마음이 들어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나는 괴담을 좋아해서 몇년 전까지는 동네 친구들과 둘러앉아 괴담을 즐겨 나눴다. 지금은 인터넷으로만 괴담을 찾아보는 정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괴담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빼꼼 문이 열린다. 이윽고 어디선가 된장찌개 냄새가 나고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니면 희미한 전구 불빛이 켜지고 그 밑에 쓰레기 봉지가 놓이는 것이다. 도무지 무시할 수 없게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럼 괴담들이 결국 모두 사람의 것으로, 너무나도 사람의 것으로 느껴져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고 미안해진다. 결국 공포는 삶의 어찌할 수 없음에서 오는 감각이기에. 결국 아주 깊은 슬픔은 공포이고, 공포는 아주 깊은 슬픔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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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흔히 그렇듯 비 오는 날이면 선생님을 설득해 수업 대신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한 선생님은 교탁을 우리에게 넘겨주셨고 우리는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대개 그런 자리면 평소 말이 많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때만큼은 꽤 공평하게 자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조용한 친구들이 오히려 인기가 좋았다. 고이 간직해둔 기묘한 비밀을 꺼내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럴 때면 나름 인기가 좋았는데 입도 떼기 전에 ‘무서워!’, ‘쟨 그냥 무서워!’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좀 억울했다. 사람 눈을 잘 못 쳐다봤기 때문에 허공을 보며 말한 것도, 목소리가 덜덜 떨렸던 것도, 도중에 머뭇거렸던 것도 괴담 발표자로사 인기에 한몫한 것 같다. 다양한 말투와 성향의 친구들이 번호 순서대로 나와 교탁을 잡았다. 때로는 깜짝 놀랄 종류의 무서운 이야기, 때로는 잔잔하지만 뒤늦게 밀려오는 종류의 무서운 이야기, 때로는 무서운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듣고 보니 웃긴 이야기 등 적절하게 배합되어 오히려 긴장했다가 풀렸다가 분위기가 아주 밀도 있게 쫄깃쫄깃했었달까.
비가 계속 왔다. 장마였다. 비가 오고 또 왔다. 우리의 무서운 이야기도 고갈되었다. 그럼에도 수업을 하기 싫다는 일념 하나로 선생님을 꼬드겨 다시 무서운 이야기 시간을 가졌다. 이제 선뜻 누구도 교탁에 서지 않았다. 결국 목소리가 큰 친구들만 다시 교탁을 잡았다. 그렇지만 이제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던 그 목소리가 큰 친구들은 저번에 했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교묘하게, 비슷하게 다시 늘어놓았다. 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무서운 이야기, 시시한 무서운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나머지 친구들도 그 이야기들이 더이상 무섭지 않았지만 수업을 시작할까 봐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무서운 척했다. 목소리가 큰 친구들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무섭지 않았지만, 믿기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아주 무서운 척했다. 선생님도 이야기가 무섭지 않았지만 수업을 하기 싫으셨는지 그냥 그대로 두었다. 결국 아무도 이야기를 무서워하는 사람 없이 눈치 보는 사람, 방관하는 사람만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가장 무서웠다. 그야말로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