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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마주하는 법
김소미 2023-06-16

링 위에서의 승패와 상관없이 자기 삶의 시간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힘을 기르고 있는 농인 복서 게이코(기시이 유키노)의 한 시절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속에서 흐른다. 웃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웃지 않거나 찡그림에 가까운 웃음을 겨우 짓고, 애처롭게 슬퍼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는 외려 굳세지는 게이코라는 여자에 대해서 이 영화는 거의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녀의 눈과 몸을 본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의 꼭짓점 사이에서 미묘한 왕복 운동을 즐기는 미야케 쇼의 인물들은 배우의 잠재력을 발산할 최적의 팔레트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시이 유키노가 그 눈빛의 웅숭한 깊이뿐 아니라 사실상 배우 자신이 장면 속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육체적 현존을 보여주면서 적확한 찬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짐작할 수 있는 대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복싱영화지만 스포츠영화다움에 몰두하지 않는다. 경기 결과보다 잠재적으로 더 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오프닝 신에서부터 주인공을 휘감고 있는 조용한 근심, 자기 인생의 행로를 고민하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품은 본연적인 아름다움이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처럼 적당한 방탕이나 낭만이라도 허락되면 좋으련만, 주인공 게이코는 복서 인생의 엄격함과 절제력을 일상에서도 고요히 품고 있기를 택한다. 계속 복서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게이코는 자신에게 묻고 대답 대신 관장에게 그만두겠다는 편지를 쓰지만 부치지 못한다. 호텔 청소 노동자이기도 한 그는 타인의 흔적을 쓸고 닦는 생계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텅 빈 체육관 거울을 자처해서 닦는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 별것 아닌 움직임은 침체된 현재의 이면에서 움트고 있는 게이코의 생기를 누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이 권유하는 대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자기 삶을 깨끗이 문질러 빛을 비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

한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코로나 시대에 청각장애인이 놓인 위치성을 서늘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포스트 코로나 영화다. 타인의 입모양을 읽을 수 없어 소외를 피할 수 없는 농인의 외로움은, 상대를 그저 어리숙한 낯선 사람 정도로 취급할 뿐인 청인들의 무심함과 부딪치며 깊어져간다. 감독은 원작 자서전을 근거로 실존 인물의 경험을 존중하되, 방심한 픽션이 과장된 악의를 풍길세라 염려한 듯싶다. 주변 인물들을 조형함에 있어 그들이 지닌 평범함, 혹은 사려 깊음의 수위에 남다른 감식안을 보여주는 미야케 쇼는 그들이 등퇴장하는 타이밍에 있어서도 알맞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게이코가 혼자라는 쓸쓸함을 불러내기도 한다. 숏의 구성과 사운드 설계 면에서 매우 정교하게 연출된 체육관의 북적거림도 그런 혼자됨까지 감춰주지는 않는다.

원한다면 이 영화는 농인 복서가 자신의 필연적 조건에 대해 고찰하는 사회학적 이야기도 될 수 있었겠지만 미야케 쇼는 우선 시시각각 변하는 거리로, 곧 폐관을 앞둔 복싱장의 풍경 속으로 게이코를 데리고 나간다. 배우의 상태와 인물의 정서, 그것을 옮기는 형식이 일관되게 수행하는 솔직함과 정갈함, 자연광 아래 지속되는 신중한 응시의 반복은 그 위로 게이코의 투지가 우리 자신의 것이었던 시간을 조용히 겹쳐낸다.

미야케 쇼의 스타일에 대하여

악몽에 시달리던 삼류 배우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부유하는 로드 무비인 <플레이백>(2012)은 데뷔와 동시에 미야케 쇼를 일찌감치 일본영화의 차세대 거장이 되리라 섣부른 추측을 낳게 했다. 서점과 클럽을 오가는 청춘 남녀 세 사람의 감정적 역동을 건져낸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 이를 10대의 세계로 옮긴 <와일드 투어>(2019)는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인지도를 쌓게 한 작품이다. 사실 미야케 쇼라는 독특한 연출자의 정수는 그가 힙합 다큐멘터리 <더 콕피트>와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을 오가는 사람이라는 점과, 지금의 중간 정착지가 나루세 미키오의 고고한 리듬을 닮은 복싱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일렁이는 기분과 풍경의 세계를 유영하듯 오갔던 그의 카메라가 보다 장소에 밀착하는 형태로 차분히 내려앉기를 택했다는 점에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고전적인 자세는 특히 흥미롭다. 복싱하는 몸, 수어를 쓰는 손, 명멸하며 도시를 가로지르는 밤의 전철이 영화의 심박수를 늦출세라 대신 부지런히 운동하는 광경에도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인물과 장소의 생동성, 흐르는 시간의 깊이와 같이 스크린에서 성취된 형언하기 힘든 어떤 진실성에 대한 감응이다.

하스미 시게이코, 미우라 데쓰야 등 일본 영화비평가들의 주요 대상이자 그들과 적잖이 공동작업도 수행하는 친절한 동료인 미야케 쇼는, 그 자신이 다분히 비평적 시각으로 영화를 해부하길 즐기는 시네필이지만 연출자로서는 오직 현장에서만 일으킬 수 있는 노동으로서의 창작 행위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다. 언어로 옮겼을 때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들- 고도의 협업과 팀워크, 현장 스탭들 개개인의 능력- 에 대하여 꾸준히 역설하는 젊은 연출자들인 미야케 쇼, 하마구치 류스케는 열악한 자본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영화에 작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저력의 배경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필모그래피 사상 첫 16mm 필름 촬영을 시도한 이번 영화가 단 19회차 만에 촬영을 마무리한 데에는 영화 만들기의 방법론과 태도에 대한 이같은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

무엇보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부지런한 산책자이자 남다른 안목을 지닌 장소의 수집가로서 미야케 쇼의 재능을 입증한다. 드론숏이 범람하는 오늘날 영화에서 풍경은 본래적 미덕을 거의 잃어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미야케 쇼는 자신이 체득해낸 소수의 공간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것을 영화적으로 더 정확히 구현하는 미술과 앵글까지 더하는 연출자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는 골목에서 게이코는 혼자일 때도 있고, 무례한 남자와 불쾌해 질 때도 있으며, 병원에 다녀오는 관장 부부와 어색하게 조우하기도 한다. 같은 장소에서 축적되는 사소한 만남들은 영화에 시간의 존재감을 입힌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만큼 인물과 장소의 관계가 두터워질 때 우리는 미약한 시간에 비로소 눈뜨게 된다. 종반부에 더이상 복서로는 남을 수 없게 된 나이 든 관장이 휠체어를 타고 해질녘의 병원 복도 너머로 미끄러질 때, 자신의 패배를 뒤늦게 인정하고 묘하게 분에 차오른 게이코가 강둑 위를 다시 달리기 시작할 때 웅크렸던 시간은 다시 발을 굴러 앞으로 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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