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임수정 배우의 오디션 때 기억이 선명하다.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귓가에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음색과 딕션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적개심과 죄의식을 느낀 적이 있는지 다소 에둘러 둘러댈 법한 어렵고 곤란한 질문에도 주저 없이 적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촬영 내내 감독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부담감을 느낀 사람은 임수정 배우였을 거다. 촬영을 끝내고 매일 밤 숙소로 돌아가 자신이 짊어지고 갈 엄청난 압박과 무게감에 끝없이 자책하고 절망하고 괴로워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고 돌파하면서 훌륭한 연기자로 성장했고 비로소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문근영당시 중학생이었던 문근영 배우는 자신의 촬영이 없을 때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선배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거나 스탭 사이에 끼어서 까르르거리거나(그녀가 현장에 오면 모든 언니, 오빠 스탭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진짜다) 그것도 시들해지면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비글처럼. ‘저렇게 기운을 다 빼면 촬영 때 어쩌려고 그러지?’ 하는 걱정도 잠시, 문근영 배우는 카메라가 돌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찌나 감성이 좋은지 화면 안에서 문근영이 웃으면 빙그레 따라 웃었고 그녀가 울면 엉엉 따라 울었다. 나만 그러고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스탭이 다 삼촌, 고모의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맑은 감성의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천사가 사람이 되면 이럴까? 그녀는 이렇게 이슬같이 맑고 깨끗한 감성으로 영화 속 아이의 죽음을 더욱더 명징한 비극으로 만들어주었다. 당시의 문근영 배우만 생각하면 지금도 내 영혼이 덩달아 맑아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