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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신성한, 이혼’

삶은 유한하니 내 인생의 열 몇 시간이 아까울 작품은 거르고 정 붙일 구석을 찾아 탐색하는 드라마 초반. 독일서 교수를 하던 피아니스트였다가 사법고시 막차를 타고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된 신성한 (조승우)과 사무장 장형근(김성균), 부동산을 운영하는 조정식(정문성) 세명의 40대 남자들이 시시덕거리는 하찮은 농담을 견디지 못해 몸을 뒤틀었다. JTBC 드라마 <신성한, 이혼>을 보며 ‘지리멸렬하고 방만하다’고 핸드폰 메모장에 불평을 써놓았는데, ‘그래서 사람이 살아진다’고 뒤집히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삶의 어느 부분을 편집해 보여주는가로 드라마를 평하자면 <신성한, 이혼>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비교 불가한 불행의 정수보다 그 나머지, 자투리에 시간을 할애하는 쪽이다. 다른 남자와 살다 임신한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결국 이혼 서류와 유모차를 선물한 형근은 서럽게 우는 와중에 성한의 집 싱크대 하부장 호스 뒤에 숨겨진 싱글몰트 위스키를 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망한 여동생 주화(공현지)가 꿈에 나왔다는 성한의 이야기 끝은 김치찌개 고기를 누가 다 먹었나 따위로 흐른다. 여러 건의 이혼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당사자들은 지난 시간을 복기하고 후회하며 두렵고 지친 상태인데, 이 실없는 코미디들은 고통에 골몰하는 시간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데 가닿는다.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돼? 혼자서?” 성한이 가족묘지 앞에서 중얼거리던 장면은 눈물을 닦다 눈가에 말라붙은 휴지 조각을 떼어내며 따갑다고 호들갑을 떠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혼 상담 후 자살 시도를 했던 의뢰인 조민정(이윤수)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상담실장 이서진(한혜진)에게 “내일도 내년에도 똑같이 불행할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리 닫아버리는 거”라고 했던 그 삶도 닫히지 않고 별것 아닌 호들갑에 피식 웃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CHECK POINT

유명 맛집 시그니처 메뉴의 기원이 어쩌다 보니, 우연히 손님이 찾아서 굳어진 경우들이 있다. <신성한, 이혼>은 와인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5천만원짜리 스피커로 트로트를 즐기는 전직 피아니스트 이혼 변호사의 독특함도 이와 다를 바 없이 풀어낸다. 양육권 소송을 했던 라디오 DJ 이서진이 재직증명서가 필요해 상담실장이 되고, 서초동 라면집 할머니의 딸 김소연(강말금)이 소주를 찾는 손님에게 마시던 와인을 잔술로 파는 것처럼 인물마다 심은 아이러니가 내막을 알면 싱거운 것도 이 드라마의 리얼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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