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바라 작가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사진 박승화 <한겨레21> 선임기자
드라마는 누구나 편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
2년을 <슈룹>만 썼다. 다 쓴 대본을 배우들이 읽는데 1~5회와 6~10회의 대사 느낌이 서로 달랐다. 방영을 앞두고 6~10회를 새로 썼다. 주요 사건만 남기고 대사와 장면은 전부 갈아치웠다. “드라마쪽은 원래 수정이 많아요. 괴로워할 시간에 그냥 빨리 고치는 게 낫죠.”
대사도 수시로 고쳤다. 쓸 때는 재밌던 대사가 귀로 들으니 “말맛이 없었다”. 배우의 말투를 고려해 대사를 다듬기도 했다. 배우들이 대본 읽는 소리를 듣다보면 개개인의 말버릇이나 독특한 어감이 느껴진다. 그에 맞춰 대사를 수정한다. 배우가 직접 대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이 저보다 더 몰입해 있어서 자연스러운 대사를 많이 제안해요.”
이야기를 담는 도구는 여럿이다. 박바라 작가는 드라마를 택했다. “놀이터가 아무나 가서 놀 수 있는 매력이 있잖아요. 주변 가까이에 있고 아무 때든 가서 재밌게 놀 수 있는 게 놀이터죠. 드라마도 그런 문턱이 낮은 놀이공간처럼 느껴져서 좋아해요.”
<슈룹>은 2022년 12월 종영했다. 박 작가는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사람들이 즐겁게 몰입하는 드라마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사람들이 한번을 보더라도 볼 때 정말 재밌어서 시간이 저절로 흘러가는, 그런 드라마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고요.”
그에게 드라마는 ‘인생의 덤’이다. “제 몫의 식사를 하는데 뭔가를 더 줘서 더 맛있게 먹는 느낌이죠. 아마 전 (극본) 당선이 안됐더라도 계속 드라마를 쓰고 있었을 것 같아요.” 박 작가가 웃었다.
에필로그
박바라 작가와 대화하며 눈사람 만드는 장면을 연상했다. 손안의 눈 한줌을 꼭꼭 뭉치고 굴려서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슈룹>의 16부작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생 이야기 쓰기를 연습한 그의 삶도 그랬다. 그가 내게 참고 삼아 빌려준 ‘소재 수첩’(글감이 될 만한 소재를 적어둔 수첩)은 무려 2001년에 작성한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조선 왕실의 자녀교육법>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 <조선잡사> 등 사극 대본에 참고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시청자로서 <슈룹>을 보며 ‘사극 쓰는 작가는 정말 많은 걸 찾아봐야겠구나’ 막연히 짐작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박 작가는 그 노력을 과시하지 않고 차근차근 글 쓰는 길을 안내해줬다. 드라마를 쓰고 생각할 때 가장 즐겁다는 그. 박바라 작가는 다음 작품도 흠뻑 즐기면서 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