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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타 스캔들’ 양희승 작가, "유머는 나에게 강박과도 같다"
김수영 사진 오계옥 2023-03-11

강박 같은 유머, 협업의 즐거움

“일일 시트콤, 일일 드라마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만 있어요. 아침에 눈떠서 새벽까지 회의하고 대본 쓰고. 일일 시트콤은 매주 대본 5개를 만들어야 하니 한편에 아이템 2개씩, 그러니까 매주 아이템 10개가 필요해요. 이걸 몇명이 해내는 거잖아요. 그 일을 10년 했어요.” 수많은 캐릭터 플레이, 일상적이고 유머 넘치는 에피소드, 협업하는 방식까지 양희승 세계의 본진은 이 시기에 구축됐다. 시트콤 장르가 성행했다면 계속했을지도 모르겠다. “예능 프로그램 안에 캐릭터가 생기고 라인이 만들어지면서 예능이 시트콤 장르를 대신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더 리얼하잖아요. 시트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면서 저도 살 궁리를 하다가 드라마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왔죠.”

- 유머가 작가님 캐릭터의 중요한 요소처럼 보입니다.

= 저에게는 강박 같아요. 유머를 넣지 않고는 신을 못 넘기는 병이 있어요. (웃음) 기술적으로 생각하면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가 많잖아요. 여성이 선호하는 여주인공에 그들이 멋있게 생각할 만한 남자주인공이어야 되거든요. <아는 와이프>의 경우 서진이 예쁜 행동만 한다고 예뻐 보이지 않아요. ‘뻥인데!’ 이렇게 장난기 많은 의외의 모습에 마음이 가죠. 여성 시청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응원할 수 있는 여주인공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둡니다. 다른 인물들 역시 제가 유머를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부분이 담기는 것 같고요.

- 스스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 네, 상당히 그렇죠! (좌중 웃음) 저, 연기를 되게 잘하거든요. 회의할 때 보면 제가 어느새 연기를 하고 있어요. 예전에 <논스톱4> 할 때 감독님이 녹화하고 오면 ‘또 희승이한테 속았다’고 하실 정도였어요. 쟤가 할 땐 분명히 재미있었는데 촬영해보니 덜 재미있었다고요. 그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해서 가끔은 ‘저 카메오 역할은 네가 하는 게 낫겠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재미있는 요소가 더 없을까 보조 작가들과 항상 궁리해요. 그래서 팀을 중요시하고요. 유머에 있어서는 사람 머리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거든요.

-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작가 생활을 시작했어요.

= 작가교육원을 다니면서 MBC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이디어맨이라고 불리면서 회의 때마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차트 글씨 잘 쓴다고 자정까지 소품을 만들기도 했고요. 생각한 것과 다르고 몸이 고된 일이었지만 재미있더라고요. 방송 일이 잘 맞는구나 싶어 MBC 코미디 작가 공채를 준비했어요. 일하면서 하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막판에 이틀 동안 몰아서 썼는데 저는 제가 될 줄 알았어요. (좌중 웃음) 무슨 말이냐면 이게 제가 쓰고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글이 술술 써져서 ‘이러다 될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그렇게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됐죠.

- ‘방송 일이 맞는다’라고 느낀 건 아무리 고생하며 일해도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괴로움이 해소됐다는 얘기일까요.

= 성취감이 있죠. 제가 의도하고 쓴 캐릭터나 상황을 보고 시청자들이 감동하거나 깔깔깔 웃을 때 희열과 성취감이 커요. 사람들을 잠깐이라도 웃게 하다니, 작은 일 같지만 되게 좋은 일을 한 기분이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 일은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별일 아닌 게 아니다, 한편의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정서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 그러니 허투루 하지 말자고요.

- 작가님의 일과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 일주일 단위로 시간 관리를 합니다. 예를 들어 화요일 저녁에는 축구, 목요일 오전에는 PT, 회의는 언제 등등 대략의 일정을 잡아놓고 거기에 맞춰 일 분량을 맞추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보통은 오전 10시에 작업실에 나와서 밤 10시쯤 집에 돌아갑니다.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에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수다를 떨거나 나가서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기도 하고요.

- <아는 와이프> 외에 대부분 공동집필입니다. 공동집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이제 막 드라마를 시작한 친구들은 보조 작가로 두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친구들에게 공동집필 기회를 줍니다. 이 작업은 무조건 효율적이어야 해요. 그 친구가 써온 걸 제가 다 고치게 되면 서로 괴로워지거든요. 초반에 작업을 해보고 상대방이 20%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고 상응하는 대가를 주는 식입니다. 역량 있는 후배들이 입봉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대본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라 협업이 즐겁기도 하고요. 다만 공과 사가 분명해야 하는 일이라 사전에 충분히 합을 맞춰봅니다.

드라마 대사 엽서

에필로그

인물 소개_ 양희승(드라마 작가) “제 드라마에 운동선수가 많이 나오잖아요. 제가 좋아해서 그래요. 학교 다닐 때부터 체육시간을 제일 좋아했고,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을 모아 강당에서 농구를 했어요. 이번에도 축구할 수 있는 모임을 찾고 싶어 전화를 돌렸죠. ‘50살 넘어도 참여할 수 있나요?’” 대단히 외향적. 단체생활과 신체활동을 즐기는 사람. 이야기 짓는 건 좋아하지만, 엉덩이 붙이고 글 쓰는 일은 좀이 쑤셔 작가라는 직업이 절반만 맞는 사람. 드라마 작가가 아니었다면 “경찰이나 군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할 만큼 규율과 질서를 편안하게 느낀다. 유머에 욕심이 많고 실제로 유머가 많은 편.

양희승 작가에겐 <일타 스캔들>의 행선도 있고 <아는 와이프>의 서진도 있다. 그가 그려온 씩씩하고 건강한 캐릭터들은 양희승 작가의 면면을 떼어 확대한 것만 같다. 촉의 비밀 같은 건 파헤치지 못했지만 드라마 속 생기와 온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좋은 캐릭터를 발견하는 촉은 이렇게 길러진다고 했다. 그가 작가 지망생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다. “내 작품에 나 같은 사람만 등장하진 않잖아요. 문을 박차고 나가보세요.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사람들은 언제 기뻐하고 언제 괴로워하는지 충분히 보고 듣고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찰,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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