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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오늘은 SF] 서글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1959년작 <그날이 오면>(On the Beach)은 요즘 보면 일종의 멀티버스 영화처럼 보이는 이야기다. 옛날에 나온 SF 중에는 이렇게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저절로 멀티버스나 대체역사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 그 미래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영화 내용이 실제와는 전혀 다른 과거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 영화의 배경은 1959년에서 5년 후인 1964년이다. 즉 이 영화는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내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1964년은 60년 가까이 지난 한참 과거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영화의 내용을 두고 우리가 사는 우주,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시나리오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발단은, 1964년에 커다란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고 호주를 중심으로 남반구의 일부 지역에서만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영화를 접하기 전에 내용을 알지 못하고 보면 영화 줄거리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자체가 반전이고 충격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더 무겁고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원래 영화의 제목은 ‘해변에서’라는 뜻인데 제목의 그 평화로운 느낌도 그렇고, 맨 처음 시작하는 장면도 그렇고, 도무지 인류의 멸망을 불러오는 격렬한 내용을 다루는 것 같지 않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제 막 아기를 출산한 젊은 부부가 평화롭고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특별한 개성이다. 영화는 핵폭발이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거창하게 보여주거나, 전쟁통에 소리 지르고 놀라고 울부짖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흔히 이런 내용을 다루는 작가들은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사회가 무질서하게 변하는 장면을 여기저기 집어넣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잔혹한 일들을 자극적인 소재로 줄줄이 나열하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폭동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폭동은커녕 소리 지르는 사람조차 몇명 없고 눈물 흘리는 장면조차 아주 잠깐 나올 뿐이다.

반대로 영화 속 각계각층의 등장인물들은 끝까지 질서를 지키며 마지막까지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영화 내내 펼쳐지는, 종말을 앞둔 호주 도시의 풍경은 오히려 아름답고 평화롭다. 특별히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면 휘발유를 만드는 시설이 파괴돼 수리할 방법이 없자 도로에 자동차가 없어졌다는 점 정도다. 그래서 다들 마차나 말을 타고 다닌다. 그래서 영상을 통해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좋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후 공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을 특히 많이 뿜어내는 핵무기를 전쟁 중에 너무 많이 사용했으며, 그 때문에 오염된 공기가 호주로 퍼져 와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은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도 일상을 버텨내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며 지내려고 애쓴다. 그게 사람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온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마주할 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희망, 행복, 명예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종말에 대한 다른 SF영화나 소설에 매번 나오는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로 벌어지는 폭동의 활극을 포기한 대신, 이 영화는 다들 평화롭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그래서 보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는 많이 있겠지만 핵전쟁만 없었다면 그래도 다들 살 만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지루하거나 잔잔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영화의 중반부는 긴장감 있고 수수께끼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호주의 군 사령부에선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흘러나오는 전파 통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북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사람들이 멸종한 지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곳에서 인공 신호가 흘러나오는 걸까? 살아남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까? 신호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해독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벌어져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일까? 그레고리 펙이 연기한 잠수함 함장은 부대원들과 함께 잠수함을 타고 북아메리카에 가서 그 정체를 밝혀보려고 한다.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호주 사람들의 모습과 마지막 시도와도 같은 잠수함의 탐사를 견주어 보여주면서, 영화는 착실히 결말을 향해 흘러간다.

계절 때문에 우울해지기 좋은 시기에 본다면 <그날이 오면>은 위험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서글픈 내용은 절망감을 일으키고, 그 절망감이 어떤 공포영화 못지않게 전쟁과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전달해준 배우들의 솜씨도 훌륭하다. 딱 맞는 역할을 맡아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는 앤서니 퍼킨스, 에바 가드너 같은 옛 명배우의 솜씨는 깨끗하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도나 앤더슨의 실감나면서도 아름다운 연기도 뛰어나서, 왜 앤더슨이 더 많은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레고리 펙은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결코 겁먹지 않을 것 같은 믿음직하고 듬직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그런 사람조차 어쩔 수 없이 가끔 드러낼 수밖에 없는 감성적인 순간을 보여줄 때에는 그 대조로 인해 영화의 슬픔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답답한 노릇이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어 냉전이 끝났을 때에는, 이제 곧 핵전쟁 따위는 멍청한 사람들이 가득한 시대에나 있었던 케케묵은 옛 영화의 소재로 잊힐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도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 대신에 인공지능이나 외계인이 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더 유행했고, 종말 영화조차 전쟁보다는 소행성이나 혜성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루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핵이니 전쟁이니 하는 이야기가 위협이 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니, 짜증스럽기도 하거니와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만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오랫동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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