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에이 애니메이션은 도호, 쇼치쿠와 함께 일본의 3대 영화 배급사 중 하나로 꼽히는 도에이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요술공주 샐리>(1966), <마징가Z>(1972), <은하철도 999>(1978), <드래곤볼>(1986), <슬램덩크>(1993), <닥터 슬럼프>(1997), <꼬마 마법사 레미>(1999), <디지몬 어드벤처>(1999), <원피스>(1999), <엉덩이 탐정>(2018) 등 세대를 아우르는 굵직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번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이루는 다섯 작품을 선보이며 그 역사와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고전 명작 <장화 신은 고양이>를 비롯하여 호소다 마모루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원피스 극장판 6기: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과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이 관객을 기다리고, <꼬마 마법사 레미> 시리즈의 20주년 기념 극장판 <꼬마 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는 2030 세대의 추억을 소환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국내 미공개작 <허긋토! 프리큐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올스타즈 메모리즈>가 영화제를 찾아 팬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인다.
<원피스 극장판 6기: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은 호소다 마모루가 도에이 애니메이션 시절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으로 인간의 욕망과 환상을 자극하는 오마츠리 섬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화려하고 비밀스러운 리조트를 중심으로 동료들이 한명씩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시종일관 유쾌하고 역동적이었던 <원피스> 시리즈와 달리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 무게를 두면서 다소 진중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호소다 마모루가 강한 영향을 받은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벌집의 정령>(1973)을 함께 참고해보면 해당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동일 감독에 의해 연출된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은 네트워크 오류로 등장한 정체불명의 디지몬이 전세계적인 통신 장애를 일으키는 속도감 높은 작품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만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명을 주면서 섬광같이 화려하게 쏟아지는 교차편집으로 몰입감을 한층 높였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함께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깊은 연대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에서 가상세계와 그 안으로 진입하는 시간을 다룬 <썸머 워즈>(2009), <용과 주근깨 공주>(2021)를 통해 호소다 월드가 확장되기 전 그 세계가 어떤 기원에서 비롯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꼬마 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는 <꼬마 마법사 레미> 시리즈 20주년 기념 극장판으로,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 여성이 일명 성지순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어른의 삶은 고민과 애환으로 가득하지만, 이들은 레미가 남긴 흔적들을 조용히 따라가면서 즐거운 균열로 비일상을 꿈꾼다. 이 여행의 근원은 오로지 좋아하는 마음, 그뿐이다. 실제로 레미와 친구들의 성장기를 통해 우정과 협동, 정의감과 이해심을 배운 2030 세대들이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어볼 수 있다. 사실 이 극장판에서 마법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어린 시절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워 보냈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 사랑을 재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바쁜 사회생활에 치여 그간 잊고 지냈던 오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2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는 동안 꼬마 마녀가 선사한 마법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감상할 수 있다. 레미 세대에게 전하는 유쾌한 초대장 같은 작품이다.
허긋토! 프리큐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올스타즈 메모리즈스틸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프리큐어> 시리즈는 지금까지 마법소녀의 계보와는 살짝 다른 묘미를 지니고 있다. 화려한 요술봉이나 멋진 주문, 사이드킥의 조력 등을 뒤로하고 맨손 격투 위주의 전투를 하기 때문이다. 'Pretty'와 'Cure'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프리큐어'는 평행세계를 질주하는 전설의 전사를 가리킨다. 어떤 빌런을 만나도 결국 승리로 나아가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허긋토! 프리큐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올스타즈 메모리즈>에서는 역대 프리큐어 총 55명이 기억과 힘을 잃으며 아기로 변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그려낸다. 그 중 유일하게 위기에서 벗어난 큐어 옐은 아기가 되어 겁먹은 채 울기만 하고 도망치려는 친구들 앞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중압감에 압도되어 비관하고, 자신의 기억을 어렵게 지켜낸 큐어 블랙은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호노카가 자신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막강한 괴물 미덴으로부터 친구들과 세상을 구하기 전, 상실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먼저 싸워야 하는 상황. 영화는 생존자의 심리적 위축과 절망감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무엇보다 총 55명의 프리큐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사상 최대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일명 올스타 작품. 15년 동안의 시간을 집약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어 <장화신은 고양이>는 일본에서 1969년 처음 선보인 이후 재패니메이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고전 명작의 힘을 다시금 증명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양이 나라에서 쥐를 도와주다가 오히려 쫓겨나버린 장화 신은 고양이 페로는 작은 소년 피에르와 가까운 친구가 된다. 피에르가 형제들로부터 학대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페로는 그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 위해 일련의 계획을 꾸미려 한다. 하지만 고양이 나라에서 쫓아온 추적자들과 공주를 호시탐탐 노리는 마왕이 페로의 목표를 두고 제동을 건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대비 디즈니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유연한 상상력에서 비롯한 스토리텔링과 안정적인 구성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보완해준다. 당시 영화의 원화를 담당했던 20대 미야자기 하야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