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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호 [인터뷰]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우리는 모두 채플린의 후예와 히치콕의 후예, 둘 중 하나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22-10-07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시종일관 유쾌하다. 자연인 장항준은 밝은 에너지와 낙관적인 태도로 주변까지 행복으로 물들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 누구도 마냥 밝기만 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외부에 밝은 에너지를 쉼 없이 전할 수 있는 건 내면 깊숙이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 장항준은 바로 그 내면의 어둠을 차분히 응시하고 더듬어 가는 데 힘을 쏟는다. 신작 <오픈 더 도어>는 <기억의 밤>에서 추구한 비밀과 미스터리의 연장에 있는 작품이다. <오픈 더 도어>는 장난기 없이 떨리는 손으로 비밀의 문을 두드린다. 장항준 감독은 코미디 영화로 데뷔했지만 언젠가부터 비밀과 거짓말을 탐색하는 재미에 흠뻑 빠진 것 같다. 두 남자의 대화로 시작된 사소한 의심이 결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불안의 실체를 드러낼 때 관객은 묵직하고 진지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 <오픈 더 도어>는 소재만 놓고 보면 단편영화 같다.

= 정확하다. 7, 8년 전쯤 이광재 감독과 술을 마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젠가 이걸 단편으로 만들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차기작 <리바운드>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년 정도 공백이 생겼고 단편을 한번 찍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는 썼다. 탈고할 즈음 송은이 대표님과 술자리에서 수다를 떠는데 이제 뭐 할 거냐고 묻길래 단편을 찍을 거라고 했더니 너무 좋다고,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면 안 되냐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기꺼이 시작했다. (웃음)

- 단편이었는데 어떻게 장편까지 확장이 된 건가.

= 원래 4천만 원 정도 예산을 잡아놓고 20분짜리 단편을 기획했다. 알다시피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지 않나. 송은이 대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 나는 괜찮아, 네가 돈만 구해오면 만들 수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제작자님 덕분에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거지. (웃음)

-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꽤 본격적이다. 해외 로케이션도 하고.

= 미국에 꼭 가고 싶었다! 영화 촬영으로 미국에 갈 날이 올 줄이야. (웃음) 재미교포 이야기인 만큼 좀 욕심을 내서라도 장면을 따고 싶었다. 욕심부린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해외 촬영, 다른 하나는 세트를 지은 거다. 주 무대가 되는 거실은 동선을 짜려면 세트가 필요했지만 솔직히 저예산에서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해외 로케이션도 결국 전부 가긴 어렵고 소수 인력만 뉴욕, 뉴저지 등에 가서 장소 소스를 따오는 걸로 타협을 봤다. 그런데 이걸 막상 입히려는 CG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공동 제작자인 장원석 대표를 찾아갔지. 나랑 일 안 할 거야? 이거 해주면 다음 작품 그 쪽이랑 할게.(웃음) 덕분에 아주 적은 비용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예산이 작은 영화도 아니지만 보이지 않게 세이브 된 비용이 많은, 저예산 고효율의 영화다.(웃음)

- 주변의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 커피차, 밥차에는 돈이 안 든 거 같다. 그거라도 줄여서 미술, 세트에 돈을 더 투자하려고. (웃음) 강하늘 배우는 중식, 석식, 커피까지 종일 책임진 날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밥, 그리고 커피차는 스태프들 복지라고 생각한다. 커피라도 먹이고 각성시켜야 현장에서 졸지 않고 일하지. 원래 복지는 있는 놈들 주머니 털어서 하는 거다. (웃음)

- 원래 단편으로 구상했던 이야기는 첫 챕터가 되고 이후에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단순히 분량을 늘리는 것과는 접근이 다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 단편의 콘셉트는 비밀이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였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하다가 그런 끔찍한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인물이 문을 여는 과정 자체가 내재된 분노와 어떤 욕망을 건드리는 과정처럼 보이길 바랐다. 문을 연다는 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의미도 있고. 본질적으로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재구성하여 인간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네 개의 챕터로 나눈 건 각 이야기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의미도 있고, 공간을 제한한 채 연출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너무 전형적인 드라마나 사건에 기대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다 챕터를 나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을 택했다.

- 전반부는 처남인 치훈(서영주)의 고백으로 전개되지만 뒤로 갈수록 문석(이순원)에게 무게가 실린다.

= 그게 단편일 때와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욕망은 어떻게 형성되고 우리는 욕망에 어떻게 굴복하는가. 과거를 거슬러 가는 구성을 통해 인물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 봤다. 문석이라는 이름은 예전 씨네21 편집장, 지금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이름에서 따왔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어감이 좋아서. 본인 허락은 받지 않았는데 씨네21 인터뷰를 빌어 말씀 전한다. 괜찮으시죠? (웃음)

- <기억의 밤>에서도 그랬지만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서스펜스에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데뷔작은 코미디였는데, 드라마 <싸인>도 그렇고 점점 서스펜스 스릴러에 매력을 느끼는 건지.

= 그것도 딱히 의식하지 않았는데 듣고 보니 그런 흐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 때 그 때 제일 하고 싶은 거, 내가 재미있는 거를 하는 편이고 최근 시기가 서스펜스, 긴장감 등에 좀 더 마음이 끌린 게 아닌가 싶다. 지금 하고 있는 <리바운드>는 또 다른 장르니까. 스릴러 질리면 또 코미디 하고. 원래 한 가지를 진득하게 파지 못하는 스타일이다.(웃음) 근데 내가 재미있는 것,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니 그건 또 신기하다.

- 스릴러와 코미디, 감독 장항준은 두 개의 바퀴로 이야기를 굴린다.

= 기본적으로 영화 하는 사람들은 모두 채플린의 후예 아니면 히치콕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사이를 왔다 갔다. 아니면 둘 다 하는 것도 가능하고.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를 보면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다가 갑자기 엄청 웃기기도 하지 않나. 그런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물론 이번 영화에선 웃음기는 뺐지만 다른 감정들을 좀 더 깊게 건드려보고자 했다.

- 세 번째 챕터의 원 신 원 테이크 촬영을 보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몇몇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 기분 좋지만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시라. (웃음) 앞부분은 말로 풀어가는 구성이라 세 번째 챕터에서는 말을 최대한 줄이고 분위기를 쌓아가고 싶었다.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보여주는 방식을 다양하게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정적인 파트인 만큼 사건 이외의 무언가로 꽉 채우고 싶었달까. 연극 무대처럼 공간의 동선을 최대한 살리되 카메라가 이들의 관계나 심리 변화를 찍어내는 방식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 연극적이면서도 생생한 날 것의 에너지가 살아있다.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제한된 공간에서 대사로 긴 호흡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연극과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찍을 때 정확하게 내용을 재현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 내용이 틀리지만 않으면 배우들의 즉흥적인 반응을 좀 더 끌어내고자 하는 편이다. 사전 연습은 일부러 하지 않고 바로 장면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합이 맞춰진 부분 이외에 발생하는 의외성이 재미있다.

- 제작 과정만 들어도 이번 영화를 향한 열의가 보인다. 상업 장편과 독립영화를 오가는 건 해외에서는 적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드문 케이스다. 계속 번갈아 가면서 작업해주셨으면 좋겠다.

= 그렇게 큰 의미 부여를 하면서 한 작업은 아니고, 이번 영화는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송은이 대표님과 컨텐츠 랩 비보, 그리고 두 피디님께서 물심양면 발로 뛰어주셔서 가능했던 프로젝트였다. 독립영화는 한국영화의 뿌리이자 중심이다. 솔직히 나는 마음씨 좋은 호구들 만나 편하게 이번 작업을 했지만 허허벌판에서 뚝딱뚝딱 집을 짓는 독립영화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절로 존경심이 든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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