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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1호 [인터뷰]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는 한계가 있을 때 살아날 길을 반드시 찾는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2-10-06

부산국제영화제 정한석 프로그래머 인터뷰

매체가 진화하고 관객의 관람 행태가 변모함에 따라 영화제 프로그램도 확장되고 있다. 특히 정한석 프로그래머가 담당하는 한국영화 파트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신설된 시리즈 화제작 섹션 ‘온 스크린’ 상영 편수가 7편(한국 작품 기준)으로 늘어났고, ‘한국영화의 오늘’은 ‘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을 신설했다. 동시에 신인 감독 및 독립영화를 발굴하고 영화팬 및 국내외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데 중요한 지분을 차지했던 ‘한국영화의 오늘–비전’과 ‘뉴 커런츠’ 부문은 보다 다양한 재능과 가능성에 기회의 문을 열었다. 일부 작품은 개막 전부터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등 영화제가 수행하는 소개의 역할도 이미 시작됐다. 영화제의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이중의 고민을 놓치지 않으며 상영작 한편 한편을 엄선해 완성된 한국영화 라인업을 살펴보았다.

-올해 ‘한국영화의 오늘 – 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이 신설됐다.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한국 상업영화라는 특징 외에 앞으로 이 섹션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나. <소년들>과 <20세기 소녀>는 어떤 이유에서 목적에 부합했나.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특별하게 선보이고자 만든 섹션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램에서 취약했던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주류 영화 산업 내에서도 이 섹션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 덕분에 좋은 작품들을 엄선해 초청할 수 있었다. <소년들>과 <20세기 소녀>는 CJ ENM과 넷플릭스가 각각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프로그래머로서 충분히 흥미롭다고 느꼈다. <소년들>은 장르적인 재미와 사실을 다루는 감독의 진지한 태도가 굉장히 조화롭게 느껴져서 선정했다. <20세기 소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 청춘 영화다.

-내년에는 더 많은 상영작을 초청할 계획도 갖고 있나.

=올해 좋은 작품들이 많아 ‘온 스크린’ 섹션이 확장된 것처럼, 확장의 전제는 엄선된 선정이다. 좋은 작품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편수가 늘어날 수 있다.

-신인 감독의 첫 장편영화가 파노라마에 포함되기도 비전에 포함되기도 한다. ‘한국영화의 오늘’에서 스페셜 프리미어와 파노라마, 비전의 상영작은 어떻게 구분되나.

=대체로 ‘스페셜 프리미어’에는 메인스트림 상업영화들, ‘파노라마’에는 주목받을 만한 소규모 상업영화와 제작 시스템이 갖춰진 기존 제도권 내에서 만들어진 독립예술영화들, ‘비전’과 ‘뉴 커런츠’에는 신인 감독과 독립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얼마간의 유연성은 늘 의식하고 있으며, 각 섹션 사이에는 구분이 있는 것이지 차등은 없다.

-작년에 이어 2편이 더 추가된, 총 12편이 비전 섹션에서 공개된다. 올해 선정작의 경향은 어떤가.

=소재와 장르, 양식이 정말 다양하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공작새>는 굉장히 재미있는 퀴어영화이고, <엄마의 땅>은 완성도 높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기행>은 애니메이션과 무성영화 그리고 6~70년대 한국 괴기담을 종횡하며 만들어진 영화다.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사회 드라마 <빅슬립>은 연기의 결과 연출의 섬세함이 월등하다. 불안함과 귀여움, 아슬아슬함이 공존하는 <너와 나>는 영화가 아주 슬픈 지점까지 가더라도 계속 생동하며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는 괴이한 힘이 있다. <페이퍼맨>은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의 인식이 코믹하면서 유려한 방식으로 농축되어 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추상성 하나로 관객을 붙들어놓는 힘이 돋보인다.

-‘온 스크린’에는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웨이브, 왓챠 등 다양한 OTT 플랫폼의 시리즈가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한국 작품 수도 지난해 2편에서 7편으로 대폭 증가했다. 영화제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

=영화 이론 혹은 비평적 관점에서 전통적인 시네마와 시리즈의 구분 및 범주화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관객으로서 체감하는 경계선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를 즐기는 축제고, 영화제가 시리즈를 껴안아야 할 분명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난해 ‘온 스크린’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지난해 업계 내부자들과 관객의 환호가 섹션의 실효를 입증했다고 생각하는 바다. 그래서 올해 상영 편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영화 산업 전반이 큰 위기를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독립영화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확실한 화제성을 견인하는 작품도 전보다 줄어들었다. 우수한 한국 독립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장으로서 발견의 역할을 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화제성과 작품의 독창성 혹은 작품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 코로나 시국은 독립영화와 신인 감독의 형식적 고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는 한계가 있을 때 살아날 길을 반드시 찾아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환경적 제약을 형식과 아이디어로 돌파하며 영화의 힘을 입증한 작품을 여럿 발견했다. 내가 느끼기에 독립영화의 만듦새는 점점 더 다양하고 좋아지고 있다. 다만 이 작품들이 업계 관계자들과 관객을 만나는 활로를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작품의 화제성은 영화의 개봉과 그에 따르는 담론 형성의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 좀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작품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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