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엔드> No End
나데르 사에이바르/독일, 이란, 튀르키예/2022년/113분/뉴 커런츠
10월08일/15:30/영화의전당 중극장
10월10일/12:00/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10월12일/10:00/영화의전당 중극장
건축직 공무원 아야즈는 아내와 함께 장모를 돌보며 살고 있다. 20년 넘게 성실히 근무한 끝에 평생의 숙원이던 내 집 마련의 꿈을 달성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비보가 떨어진다. 정부의 눈 밖에 나 독일로 도망쳤던 처남이 30년 만에 귀국한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거주 중인 집이 처남의 소유라는 점이다. 처남이 집을 팔아버리면 세입자 신세가 되고, 이내 아파트 매입 계획에 차질이 갈 것이라 두려워한 아야즈는 궁책을 짜낸다. 처남의 귀국을 늦추기 위해 가족들에게 국가정보기관이 집을 수색했다고 거짓말하는 방법이다. 예상대로 처남의 일정에 차질은 생기지만, 아야즈에게 더 큰 비극이 시작된다. 그에게 정부 요원이 찾아와서 처남과 처남 주변 인물의 신상을 끝없이 캐묻고 밀고를 강요한다. 이번 일이 마지막이란 말만 반복되고 가혹한 첩보 강요는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아야즈의 소원이었던 내 집 마련, 훈장과도 같았던 근속의 명예까지 건드리자 그의 일상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노 엔드>는 그 제목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소시민의 비극으로 순환된다.
혹독할 정도로 빈틈없는 서사가 아야즈의 삶을 촘촘히 침식하는 동안 카메라는 그 침식의 양상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집중한다. 가령 아야즈의 삶을 옥죄는 무형의 압박이 프레임 속 프레임 구도의 갑갑함, 저속 트랙 인의 중압감, 내화면과 외화면의 철저한 단절감, 그의 주체적인 시선을 차단하는 방식 등으로 가시화된다. 아야즈와 정부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와이드 화면비 내에서 적절히 조절하는 연출 역시 영화의 숨 막히는 위압감을 극대화하는 주요 요소다. 무력한 시민들이 무자비한 공권력 앞에서, 혹은 공권력에 숨은 이들의 악의 평범함 속에서 저물어 가는 이란의 세태에는 멀지 않은 과거의 우리 역사가 겹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