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Beyond
이하람/한국/2022년/95분/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10월09일/16:3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월11일/20: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월12일/18: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서사는 퍽 단순하다. 전쟁통에 남동생을 돌보던 누나가 음식을 구하러 나가면서 눈이 먼 할머니에게 동생의 끼니를 부탁한다. 그런데 한 탈영병이 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소년의 밥을 훔쳐 먹는다. 원체 몸이 허약한데다 언어 장애인인 소년은 누워서 굶주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운 누나는 영 돌아오질 않는다. 그런 소년에게 갑자기 처녀귀신이 찾아온다. 몸짓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친밀해진 둘은 처녀귀신의 제안으로 기이한 여행길에 오른다. 그렇게 소년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은 단테처럼 지옥과 연옥, 천국을 경험한다.
반면 연출은 과잉이라 할 만큼 화려하다. 시작은 흑백 화면을 무참히 절단하는 투박한 컷 편집과 불안정한 줌 인-아웃, <국가의 탄생>이 떠오르는 옛 방식의 아이리스와 잦은 디졸브다. 여기에 말 못 하는 소년을 위한 자막까지 스크린에 띄어지면서 초기 무성 영화에서 느껴질 법한 강렬한 이미지의 감각이 샘솟는다. 또 소년과 귀신의 여행길에선 수묵산수의 후경을 바탕으로 장대한 익스트림 롱숏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림보’나 ‘쉐이디 파트 오브 미’ 같은 횡스크롤 게임처럼도 보인다.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면의 연속이다. 두 사람이 지옥쯤에 도착하자 부지불식중 컬러가 화면에 혼합되고 영화의 이미지는 더욱이 생경해진다. 여기에 유치원 연극 무대 같은 동화 풍의 세트 미술, 조악함과 세련됨을 고루 지닌 일상의 소품들이 더해지면서 영화의 기괴한 아름다움이 한층 더해진다. 이처럼 영화 내내 산발하는 과잉의 형식미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어지는 양태야말로 <기행>의 가장 기이한 지점이다. 이는 제작, 각본, 감독, 미술, 촬영, 조명, 음향, 편집, 음악, 색보정까지 혼자 일궈낸 신인 감독의 신통한 연출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