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소파를 등받이로 사용할까? 모임의 끝은 왜 항상 노래방일까?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 매혹적인 목차를 보면 궁금해서라도 해당 페이지 먼저 펼치고 싶다.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책에는 백이면 백 외국의 사례와 한국을 비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럴 경우 한쪽을 긍정적으로, 다른 한쪽은 그에 비해 뒤처지는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정치나 철학, 사회, 역사, 인문서는 서양에 유학했던 전문가가 한국이 그에 비해 선진적이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건축가의 서적 중에는 한옥이 현대식 건축물과는 달리 공동체를 신뢰하고 자연을 존경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드러낸다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과 파리를 오가며 거주했던 임우진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도시>에도 해외와 한국의 도시 체제와 구조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신호등, 횡단보도의 위치, 극장과 묘지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함께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소개하는데 그 어디에도 비교급은 사용하지 않는다. “글에서 파리가 가진 몇몇 장점을 내세워 서울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리 또한 무수한 문제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맥락도, 역사 배경도 다른 도시의 속성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다”며 저자는 글을 쓰며 견지하려 했던 태도를 말한다. 익숙해진 공간에 대해 사람들은 새롭게 바라보기 어렵다. 특히 도시는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존재했기에, 공간을 개인의 편의성에 맞춰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상을 발휘하기 어렵다. 서울 횡단보도의 폭은 어떻게 정해졌고, 신호등과 운전자 시선의 거리는 어떻게 설정되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임우진 건축가는 파리에서도, 서울에서도 이방인의 시선을 가지고 공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시 체제와 공간 형성 과정을 안내한다. 한국의 아파트는 왜 같은 방향만 바라보도록 설계되는가. 현대인은 왜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도시는 누구의 것일까. 의문을 품어보지 못한 질문에 대해 건축가는 반복해 묻는다. 우리가 더 나은 환경을 상상하고 주장하고 제안할 수 있도록.
227쪽
남을 못 들어오게 자기 단지를 막으면, 자신도 남의 단지에 못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도시가 진화하면 결국 자신이 도시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은 자기 단지밖에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