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의 획정 없이 생태 윤리를 논하는 최상급 사례 '군다'
글 정재현
2022-07-13
흑백 화면 속 암퇘지 한 마리가 새끼 돼지 열 마리를 출산한다. 세상에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은 저마다 생존을 도모하고 어미 돼지는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출산을 이어간다. <군다>의 오프닝 시퀀스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 진득하게 바라보는 영화 전체의 태도를 함축한다. <군다>는 돼지, 소, 닭의 평온한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군다>에 등장하는 암퇘지 한 마리, 새끼 돼지 열댓 마리, 소 열댓 마리와 닭 한 마리는 영화가 끝나도 관객의 마음속을 서성인다. 관객 마음에 동물이 이토록 오래 남는 이유는 인간의 시선을 걷어낸 채 관찰 대상에 접근하는 <군다>만의 태도에 있다. 가령 <군다>는 각각의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어 관객에게 동물 개체를 캐릭터로 인식하도록 하지 않는다. 또한 농장 주인의 인터뷰나 관찰자 시점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도 들어 있지 않다. 대신 <군다>는 새끼들을 헛간에 두고 잠시 햇빛을 쐬러 나온 어미 돼지의 눈동자와 콧등을, 들러붙는 파리는 개의치 않은 채 한가로이 초지를 거니는 소의 표정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외다리 닭이 닭장 밖으로 나올 때의 한 걸음을 마치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장면처럼 숭고히 담아낸다. 이처럼 <군다>는 인간의 시선이 개입하는 순간 피치 못할 타자화의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한 채 관객으로 하여금 동물들이 느끼는 감각을 함께 체험토록 하는 데 집중한다. 그저 동물들의 오롯한 시간을 담아내며, 모든 존엄한 개체가 인간의 편의와 무관하게 자신의 서사를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 동물권 활동가이기도 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기획자로 참여했다. 제31회 스톡홀름영화제에서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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