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지 않는 여성이 버티고 선 알렉스 가랜드의 컨트리 하우스 '멘'
글 이유채
2022-07-13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이혼을 요구하자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던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하퍼(제시 버클리)는 안정을 위해 시골 주택에서 2주 살기에 돌입한다. 동화 같은 집과 숲에 만족한 그는 심신이 나아질 거라 기대하지만 예상은 빠르게 빗나간다. 철도 터널에서 누군가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에 침입한 나체의 남성까지 발견한 그는 무언가가 따라다닌다는 공포와 잊고 싶은 결혼 생활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등의 SF 스릴러를 만들어왔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민속 호러 영화로 돌아왔다. ‘남성의 힘을 상징’한다고 추측되는 유럽의 형상물 그린맨에서 영감을 받은 <멘>은 감독이 15년 전부터 구상한 이야기로, <엑스 마키나>를 제작했던 A24와 다시 한번 작업하면서 비로소 결실을 보게 됐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언어적,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다룬 영화는 여성 주인공으로 하여금 수난을 겪게 하지만 결코 그를 나약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여성 혐오적 욕설,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침입자를 상대로 비명을 지를지언정 물러서지 않는 하퍼는 자신을 제압하려는 그들의 전략을 무력화한다. 모든 위협이 가소롭다는 듯한 하퍼의 표정은 배우 제시 버클리의 전매특허다. 또한 한명의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반복되는 같은 얼굴의 이미지가 기이하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이와 직업이 다른 인물들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한 사람처럼 연기한 배우 로리 키니어의 표현력이 놀랍다. 두 배우의 집중력과 이 영화의 기술력이 집약된 결말부의 신체 변형 시퀀스는 <티탄>을 떠오르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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