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장르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거리 문화와 갱스터 랩의 영향으로 갱스터 누아르 영화에 대한 힙합 커뮤니티의 컬트적인 시선과 애정은 남다르다. 이런 장르영화를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성과 누아르 특유의 매캐한 분위기 때문에 열광하는 이도 많겠지만 힙합 팬들에게는 조금 더 각별한 이유가 존재한다. 많은 힙합 음악에서 고전 갱스터영화들의 무수한 레퍼런스와 오마주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전처럼 여겨지는 영화가 있다.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다.
80년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가 범죄와 함께 정착, 생존해나가며 도시의 마약왕으로 거듭나지만 결국엔 파멸하고 마는, 한 범죄자의 흥망성쇠를 전형적이면서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스토리다. 우리가 줄거리보다 눈여겨볼 건 주인공 토니 몬타나가 처한 신분과 야망, 그리고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태도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토니 몬타나의 행적과 성공, 그가 맞게 될 비극적 결말은 대부분의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드림이 결코 달콤하지도, 호락호락하게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극명한 교훈과 희망을 남긴다. 이 영화는 스크린 이상의 영역에서 의도치 않은 영향력을 갖게 됐다. 토니 몬타나에게 자신을 투영한 미국의 많은 이민자-빈곤층들로부터 큰 공감대를 이뤄낸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훗날 개봉 당시의 흥행과 평가보다 더 뜨겁고 긴 인기를 누린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힙합의 역할이 있었다.
Lesson Number 1. Don’ t underestimate the other guy’s greed!
Lesson Number 2. Don’ t get high on your own supply.
(첫 번째 명심. 다른 이의 욕심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두 번째 명심. 내가 파는 마약에 취하지 말 것)
터프한 컨셉의 래퍼들, 특히 길거리의 삶과 갱단 활동의 이야기를 주된 가삿거리로 삼는 많은 갱스터 래퍼들이 자신의 인생을 <스카페이스> 영화에 비유하며 토니 몬타나를 자처했다. 이런 랩의 가사들은 실재와 허구가 뒤섞여 있거나 갱스터 캐릭터 자체가 기믹인 경우도 많지만, 전설적이고 악명 높은 갱, 마약상의 이름을 자신의 별명처럼 사용하는 건 랩 엔터테인먼트 게임에서 흔하게 시도돼왔다. 갱스터 업력(?)에 의거한 길거리 명성을 ‘스트리트 크레딧’이라고 부르며 얼마나 진정성 있게 스트리트 크레딧을 가진 갱스터 래퍼인가를 증명해내는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프로모션으로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토니 몬타나는 여전히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대변된다.
전설적인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의 래퍼 래퀀은 영화 <스카페이스>를 처음 힙합으로 가져온 아티스트 중 하나다. 그의 1995년작 앨범 《Only Built 4 Cuban Linx…》의 수록곡 <Criminology>에서 토니 몬타나와 소사의 대사를 샘플링한다. 훗날 힙합과 <스카페이스>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래퀀은 이 영화를 힙합의 바이블이라고 극찬한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래퀀은 여러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음악과 앨범에 녹여내기로 유명한데(주로 오우삼 감독의 홍콩 누아르영화나 쿵후영화를 차용한다) <스카페이스>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각별해 보인다. 래퍼 제이 지는 1996년 데뷔 앨범 《Reasonable Doubt》의 <Can’t Knock the Hustle>을 시작으로 커리어 내내 끈임없이 <스카페이스>와 토니 몬타나를 오마주했다.
“The World Is Yours.”(세상은 너의 것)
이 문장은 <스카페이스>를 대표하는 메시지로 유명하다. 영화 중반부 토니 몬타나가 탐욕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 떠다니는 비행선에 적힌 문구로, 또 엔딩 직전 토니 몬타나의 시체 위로 이 문장이 적힌 동상이 등장한다. 영화가 담아내고 싶었던 인간의 욕심과 몰락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문장은 훗날 힙합 명곡으로 재탄생한다. 역사상 최고의 힙합 클래식으로 기록될 나스의 1994년 데뷔 앨범 《Illmatic》에서 <The World Is Yours>로 오마주된다. 길거리 삶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 나스의 가사는 토니 몬타나가 가진 어두운 이면 또한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Musician, inflictin’ composition of pain I’m like Scarface sniffin cocaine Holdin a M-16, see with the pen I’m extreme, now(뮤지션, 고통의 덩어리 마치 코카인을 하는 스카페이스같이 M-16을 들고, 펜과 함께면 난 무적이지).
나스, <N.Y State of Mind> 중에서
이러한 90년대 초중반 힙합계의 흐름은 <스카페이스>를 지금의 컬트적인 인기와 더불어 힙합의 상징적인 존재로 급부상시켰으며 그 역사는 계속된다. 휴스턴 출신의 베테랑 래퍼 ‘스카페이스’는 자신의 이름 자체가 영화 제목이다. 2012년 래퍼 퓨처는 <Tony Montana>라는 제목의 노래를 데뷔 앨범에서 히트시켰고 캄론, 릴 웨인, 릭 로스, 제이다키스, 더 게임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에서 이 영화를 오마주했다.
<스카페이스>는 개봉 당시 ‘무의미한 유혈 낭자’, ‘조폭 미화’라는 악평도 따라왔지만 결국 오늘날에 와서는 수많은 팬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힙합 문화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다. 수많은 래퍼들의 성공 신화는 <스카페이스> 공식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다. 세상을 가지라고 소리치며 머신건을 쏴대는 악당 토니 몬타나는 결국 비참하게 죽었지만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안티히어로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부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