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https://twitter.com/i/spaces/1OdKrBWyarkKX)
이다혜 @d_alicante다혜리의 작업실 10번째 게스트는 에세이 <어금니 깨물기>를 펴낸 김소연 시인입니다. 가족에서 시작해 작가가 애정하는 여러 장소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금니 깨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김소연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절로 듭니다. 그의 기억으로 만든 지도가 있다면,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럼 김소연 작가를 모시겠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소연 @einBackenzahn네, 안녕하세요.
이다혜 @d_alicante책 제목을 <어금니 깨물기>라고 정한 이유부터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소연 @einBackenzahn제 얘기를 본격적으로 털어놓는 산문집이다 보니, 문학성 있는 단어를 기피하고 책 내용에 어울릴 만한 제목을 찾았어요. 책에 '어금니를 깨무는 일'이라는 챕터도 있고, 산문집에 실린 글들을 보니 어금니를 꽉 깨운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더라고요.
이다혜 @d_alicante이번 책을 쓰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연 @einBackenzahn처음 이 책을 쓸 땐, 어른다운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의젓하고 먼 곳을 응시하면서 무언가를 제시하는 어른다움을 표현하려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제가 비루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제가 생각한 어른다움의 반대 방향으로 글이 가고 있지만, 이게 진짜 어른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어른다움에 대한 제 착각을 깬 거죠.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도 정성들여 쓰면 비루함이 아닌, 아름다움 비슷한 쪽으로 가닿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다혜 @d_alicante가족 이야기가 그런 것 같아요. 기억을 더듬다보면 '아, 이건 글로 쓸 수 없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많죠.
김소연 @einBackenzahn자기 검열이 엄청났어요. 누구한테 보여줄 수 있는 글이 되든, 혼자 보고 말 글이 되든 일단 써놓고 보자는 심정으로 썼어요. 어쩌다가 보여주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웃음)
이다혜 @d_alicante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면서 꼭 실어야겠다고 생각한 대목이 있으셨나요?
김소연 @einBackenzahn사실 전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엄마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커와서인데요. 거리를 두고 엄마를 조금 싫어하는 마음으로 컸죠.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제가 노년의 엄마에게 유일한 말벗인 장녀가 됐어요. 엄마에게 질문도 많이 해서 이야기를 많이 발굴하고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성공하진 못했어요. 엄마가 얘기도 잘 안 해주시고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이다혜 @d_alicante책에 어머니에게 일기장을 사드린 에피소드가 있는데, 읽으면서 '아, 이것은 정말 시인 딸이 할 만한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시인으로서 시를 쓸 때와 에세이를 쓸 때 느끼시는 감각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김소연 @einBackenzahn시를 쓸 땐 며칠 일정을 비워둬요. 평소에 지저분한 책상 위도 깔끔하게 치우고요. 그러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의식을 치르듯 시에 접근합니다. 산문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틈틈이 놀이하듯 써요. 이번 산문집은 제가 여태껏 써왔던 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발표한 시에서 생략한 이야기, 시 표면에 떠오르는 이야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만한 것들만 담고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담았어요.
이다혜 @d_alicante말씀하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김소연 @einBackenzahn첫 시집, 첫 산문집, 두번째 산문집 등을 내기도 했고, 좋아했던 산문집을 10년 후 다시 펼쳤을 때 글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를 경험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 과정에서 감각적으로 터득한 것 같아요. 전 글을 쓸 때, 2022년에 출간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초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2030년에 읽으면 어떤 이야기로 읽힐까 생각하면서 써요. 그 상상을 하면서 한마디를 더하기도 하고, 더 하려다가 말기도 합니다.
이다혜 @d_alicante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식상한 소재와 그렇지 않은 소재를 구분하지 않는 시인”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쉼보르스카의 태도가 <어금니 깨물기>의 태도와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김소연 @einBackenzahn언젠가부터 창작하는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이야기를 내가 데리고 와서 정말 잘 다루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식상하다는 건 그 자체가 진리라서 너무 많이 누군가가 손 댄 이야기들일 확률이 높죠. 쉼보르스카의 태도를 훔쳐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이다혜 @d_alicante쉼보르스카처럼 소개해주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김소연 @einBackenzahn메리 루플의 산문 <나의 사유재산>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추천하고 싶어요. 메리 루플의 시도 번역 출간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제가 추천사를 쓰느라 미리 읽은, 루이스 글룩의 시집 <아베르노>도 너무너무 추천하고 싶어요. 아주 경이롭고 한국문학은 아직 손대지 않는 영역을 곡진하게 다루고 있어서 놀라면서 읽었어요.
이다혜 @d_alicante시인님은 시 쓰기 수업도 종종 여시는데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말씀이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소연 @einBackenzahn두 가지를 반복 얘기하는 것 같아요. 하나는 생각한 만큼을 쓰기보다는 생각 못한 데까지 쭉쭉 가봐라. 처음 시를 쓰는 분들은 대개 머릿속으로 시로 쓰겠다고 생각한 내용을 시의 마지막 순간에 쓰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생겨먹은 만큼밖에 못 써요. 저는 그 생각을 첫줄에다 넣고 두 번째 줄부터 어떻게 쓸지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분명 당신보다 나은 글이 나온다고요. 두번째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로 시를 쓰지 않고 읽어온 시의 문체 영향력 아래에서 쓰는 사람들에게 그것부터 바꾸자고 말합니다.
이다혜 @d_alicante보통 글을 쓸 때 우리는 생각하는 걸 구현하려 하잖아요. 지금 말씀한 내용은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 다음 단계인 모르는 것으로 빨리빨리 나아가면서 끝을 보라는 이야기잖아요.
김소연 @einBackenzahn생각한대로 구현하는 걸 재현이라고 하는데요. 산문의 경우엔 재현이 비교적 쉬워요. 설명적이어도 되고요. 하지만 시로 재현을 하려다 보면 문장이 자기가 머릿속에 상상했던 것과 다르고 못나 보이거든요. 글 쓰는 사람 스스로 충실히 재현하지 못하고 성기겠다는 느낌밖에 못 받아요. 시가 시다워지려면 생각을 재현하려 하지 말고 거기서부터 출발점을 삼아서 미처 생각 못한 데까지 가야 해요.
이다혜 @d_alicante이야기를 들으니 시와 산문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네요. 이번 책에는 시인들이 낸 첫 시집을 각별히 여긴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첫 시집의 어떤 점이 김소연 시인을 움직이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김소연 @einBackenzahn첫 시집이란, 미지의 세계가 아는 세계가 되는 순간이에요. 저는 첫 시집을 내기 전 시인들이 문예지를 통해 발표하는 시를 한편 한편을 지켜봐요. 혼자 그의 첫 시집을 궁금해 하면서 제멋대로 상상하기도 하죠. 하지만 막상 그의 시들을 묶은 시집을 보면, 제 상상대로였던 적은 한번도 없어요. 늘 의외의 세계이고 상상보다 더 놀라워요. 첫 시집은 시 한편 한편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고, 엄청나게 매혹된 세계예요. 한권의 시집은 누군가의 세계관입니다.
이다혜 @d_alicante마지막으로 산문집 <마음사전>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은 지금도 많은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는 책입니다. <마음사전> 책머리에서 “처음 700가지가 넘는 마음의 낱말들을 수첩에 적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책에 담지 못한 낱말을 바탕으로 후속작을 쓸 계획이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소연 @einBackenzahn출판사와 개정판을 상의해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완결성 있었던 작업이어서 손대는 게 쉽지 않아 개정판을 사양했어요. 후속작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정말 재미겠단 생각이 드네요. 이 생각이 오래 들면 한번 써보겠습니다!
배동미의 책갈피
<어금니 깨물기>에는 걷기를 좋아한다는 시인님의 고백이 등장합니다. 오늘 방송을 듣는 트위터리안들에게 걷기를 추천하는 의미에서, 걷기가 좋은 이유를 한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바깥에서 이런저런 부대낌이 있었던 날, 지하철에서 한정거장 먼저 내려서 집까지 걸어 보시라. 그 길에서 하나씩 하나씩 상념들을 길에다가 무단투기하고 집에 들어오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 수 있습니다.
최근 시인님이 보고 빠진 영화나 다큐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안나>라고 정한아 소설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지 주연의 시리즈물을 봤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오늘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최근 출간된 정재율 시인의 첫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을 읽고 있었거든요. 이걸 마저 읽고 잘 것 같아요. 장마철 눅눅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 저절로 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