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과장> <열혈사제> <빈센조> ‘정의 3부작’ 마친 블랙코미디의 대가, 2010년 <신의 퀴즈> 데뷔 이후 17년 부터 정의 구현 내용에 힘 실어
“변종 정의관 가진 인물 내세운 건 결백은 공격당하기 쉽기 때문, 시대 상황이 작품에 영향 끼쳐, 빈센조는 내 허무주의 반영된 인물”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정의 원칙 잊지 말자 전하고 싶어”
박재범 작가는 2017년 <김과장>을 시작으로 <열혈사제> <빈센조>까지 정의 구현하는 드라마를 주로 썼다. 그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작은 변화는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email protected]
잊을 만하면, 연락하기를 1년.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그와 비로소 마주 앉았다. 부조리와 부정부패에 맞섰던 <김과장>(KBS2) ‘김성룡’, <열혈사제>(SBS) ‘김해일’, <빈센조>(tvN) ‘빈센조 까사노’를 창조한 박재범 드라마 작가다. “작가는 장막 뒤에 있어야 한다”며 그는 2017년 ‘삥땅’ 전문 경리과장이 대기업 부조리에 맞섰을 때도(<김과장>), 2019년 국정원 출신 사제가 부정부패를 바로잡았을 때도(<열혈사제>)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지난해 2~5월 이탈리아 마피아가 정의를 구현한(<빈센조>) 뒤에야 그는 이 소신을 잠시 내려놓았다.
<빈센조>로 박재범표 ‘정의 3부작’도 완성됐다. 그는 “<김과장>을 구상할 때부터 소시민의 정의를 주제로 ‘정의 시리즈’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0년 법의관 이야기를 다룬 <신의 퀴즈>(OCN)로 데뷔해, 2013년 자폐 3급 소아과 의사 <굿 닥터>(KBS2), 2015년 뱀파이어 외과 의사 <블러드>(KBS2)를 지나, 2017년부터 그는 작가 인생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를 쓰는 데 쏟아붓고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사회정의의 중요성을 환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정의를 비켜 간 정의 구현자들
―42번째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만났네요. 그때와 견줄 순 없지만, 블랙코미디로 사회정의를 구현한 것은 작가님 나름의 정의 추구 방식이라고 보면 되나요.
“그분들(민주화운동 유공자)이 희생과 헌신 등 인간적인 방식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정의를 제 드라마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실현해보고 있는 거죠. 과거 우리는 낭만에 차 있었잖아요. 정의란 말을 듣거나, 불의를 보면 가슴속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요즘은 정의나 공정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애가 강조된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우리가 이러했잖아’라는 정서에 안착해, 아주 조그만 정의라도 행해보자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작품들을 보면, 정의를 구현하는 주인공이 정작 정의에서 조금씩 비켜나 있어요.
“공정이나 정의를 구현하는 이도 어느 정도 뻔뻔함을 갖고 전투에 임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결백은 공격당하기 쉽잖아요. 그런 경우를 현실에서도 봐왔고. 제 드라마 속 영웅들은 정의롭지 않기에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정의는 자칫 강박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현실에서 그런 강박을 갖게 된 사람들이 한번만 더 모질게 마음먹고 훨씬 강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제 바람이죠.”
―회사원, 사제, 마피아가 부정부패를 응징해요.
“드라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라면 뻔하잖아요. 검경일 수도 있고, 사회 지도층일 수도 있고. 그런 정의를 이루는 주체에 대한 제 믿음이 사라졌어요. 그렇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저는 회사원, 사제, 마피아가 좀 평범한 강자라고 생각했어요. 이 셋의 공통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 실현 주체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을 수는 있지만, 힘센 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변종의 정의관을 가진 사람이에요.”
―검경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계기가 있나요.
“시대가 이야기해주고 있잖아요. 드라마를 집필할 때, 저는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보느냐를 반영해요.”
■ 드라마, 시대 상황 환기해야
―‘정의 3부작’을 쓸 때도 당시 사회를 반영했나요.
“국정농단으로 시끄러웠을 때 <김과장>을 썼고, 혐오 사회가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 <열혈사제>를 썼어요. 모든 혐오가 팽배했을 땐 <빈센조>를 집필했죠. <김과장>은 소시민의 정의, <열혈사제>는 세속의 정의관을 가진 성직자의 정의, <빈센조>는 악당의 정의를 갖고 썼어요.”
―드라마가 갈수록 어두워지고 사건은 세져요.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과장> 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열혈사제> 때는 성직자가 중용의 빛으로 사건을 봉합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희망이 남아 있었던 거죠. <빈센조>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빈센조는 이젠 절대 악엔 악으로 맞설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회의론, 저의 허무주의가 반영된 인물이기도 해요. 장르적 특성상 사회를 ‘미러링’해야 하니까 제 정서가 담길 수밖에 없어요. 힐링물을 쓰면 다를 텐데.”
―글 쓸 때 그런 정서를 반영하면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빈센조> 쓸 땐 정말 힘들었어요. 절망은 나의 기조인 거지, 보는 분들에게 드러내면 안 되니까. 그 느낌은 대사에 녹였어요. 빈센조는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아요. ‘악당도 편한 세상을 원하는데, 그렇지 않다’거나 “어쩔 수 없다” 같은 대사가 많아요. 하지만 이건 단지 서브텍스트 개념이어서 보신 분들이 받은 느낌을 간직하는 게 맞아요. 제 생각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갖고 있는 보물창고 같은 것이니까요. ”
―드라마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정의가 없는 사회니까, 필요하죠. 정의나 공정이 이 사회에서 제1의 가치가 아니잖아요. 공정을 외치는 게 이렇게 공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드라마가 이런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세상을 바꾸는 것까진 아니라고 봐요. 다만 메시지를 주면서 잊지 말자고 환기하는 거죠. 정의의 원칙을 망각만 하지 말자.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면, 출근길이 불편하더라도 낭만의 시대처럼 최소한의 이해를 해주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자는 거죠.”
■ 복합 장르로 낭만적으로
박재범 작가는 오티티(OTT)가 활발해지기 이전부터 티브이(TV)에서 과감한 시도를 해왔다. <김과장>에서 시작한 박재범표 블랙코미디는 <열혈사제>에서 액션과 범죄가 가미되며 폭발했다. 진지한 범죄 수사물에서 코피가 터지는 ‘어쩌면 유치했을’ 설정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시청률도 20%를 기록하며 당시 지상파를 살렸다. <빈센조>에서는 티브이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았던 잔인한 빌런의 최후도 그렸다. <열혈사제>를 뛰어넘은 여러 장르를 융합해놓은 <빈센조>는 “예술작”이라는 평도 나온다.
―<빈센조>에서 장준우(옥택연)가 죽는 장면은 쇼킹했어요.
“그가 죽는 장면에서 감독과 함께 케이(K)-드라마 하드보일드를 시도해보려고 했어요. 최명희(김여진)와 장준우가 죽는 방법은 후보가 각각 8개였어요. 장준우를 짐승한테 던져주는 것도 있었고. 가장 깔끔한 것 같아서, 장준우가 고문 기계에서 서서히 죽는 처음 방법 그대로 갔어요. 사실 더 잔인한 건 두 사람의 사체를 포도밭에 묻는 것인데, 그 장면이 사람이 발로 땅을 밟는 정도로만 표현되어서인지, 이야기가 별로 안나오더라고요.(웃음)”
―코믹 요소는 자칫 범죄 액션물을 망칠 수도 있잖아요. 연출, 배우와 어떻게 조율하나요.
“감독과 배우한테 코미디는 합의하는 장르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코미디 요소의 적정치를 찾으면 (배우나 스태프들이) 받아들이는 게 다 달라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돼요. 처음 섭외할 때 얘기한 대로, 작가의 컬러로 밀어붙여야 해요.(웃음)”
―<빈센조> 이상의 작품이 나올까, 시청자의 관심사이기도 해요.
“그래서 부담이 돼요. 작가가 작품마다 너무 세상 한탄만 하는 것 같아도 보기 싫을 것 같고, 또 시청자들은 이미 제 블랙코미디 코드도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요. 코미디는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해 스릴러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 장기를 놓고 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럼 다음 작품도 블랙코미디가 가미된 액션 스릴러인가요.
“내년 <에스비에스>에서 방영 예정인 작품과 오티티에서 선보일 공상과학(SF)드라마 <디에이오>(DAO)를 준비하고 있어요. <디에이오>는 웹툰 <무당>이 원작인데, 간단히 말하면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예요. 내년에는 제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작품도 나와요. 1971년 <수사반장>을 리메이크했는데, 그 팀의 10년 전 이야기를 담아요. 최불암 선생님이 연기했던 인물이 어떻게 좋은 반장이 됐는지를 담아요. 최불암 선생님께 특별 출연도 제안할 생각인데, 꼭 빛내주시면 좋겠어요.” 그는 2019년 작가 사무실을 차리고 호러, 스릴러, 코미디 등 장르별로 뛰어난 후배 작가 8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작가들이 공동작업 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미국 드라마 작업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그는 “<굿 닥터>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됐을 때 작업 현장을 봤더니 자폐인 작가, 카지노 딜러를 했던 작가 등 다양한 이들이 대본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 장르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르별 작가들은 2~3명씩 각각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회의는 다 같이 한다. 이렇게 만든 첫 결과물이 <수사반장>이다. 그는 “작가가 혼자 집필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티티 등에 대응하려면 작가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후진 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시즌제 리메이크작 <굿 닥터>. 박 작가의 첫 지상파 드라마.
■ 대본 쓸 때가 가장 재밌어
박재범 작가는 중2 때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부전공했다. 연극에 빠져 독립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결단해야 할 때 머리를 비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전 계속 생각한다면서 감독을 하거나 글을 써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졸업하고 영화 입봉 준비와 글을 같이 썼다. 28살에 한국방송(KBS) 극본 공모에 “그냥 한번 내본” 극본이 5명 모집 중 6등을 했는데, 1년간 방송사에서 인턴 작가를 하는 행운도 얻었다. 30살에 연출한 독립영화는 ‘부천영화제’에 출품됐다. 30~38살에는 참여했던 영화가 네 작품이나 제작이 무산되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났는데 걱정이었죠.” 그러던 차에 오시엔에서 제안을 받고 <신의 퀴즈> 시즌 1~3을 집필하면서 ‘작가 박재범’의 시대를 맞았다. 시즌3이 끝나기 전 <굿 닥터> 제작이 결정됐고, 큰 인기도 얻으면서 ‘스타 작가’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에서 시즌제로 리메이크돼 현재 시즌5까지 나왔다.
―작가들이 대부분 거친다는 교육원도 안 다닌 거네요.
“대신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독립영화를 준비할 때 글을 배우려고 만화 스토리를 2년간 쓴 적이 있어요. 응암동의 한 허름한 건물 2층 작은 만화 사무실이었는데, 선생님이 비범했어요. 항상 주인공을 죽인 다음에 이야기를 이어서 써보라고 줬어요. 전 늘 어떻게든 스토리를 짜서 다시 살려놔야 했고요. 힘들다고 하면 제게 늘 그러셨어요. ‘글이라는 걸 수습하는 게 작가’라고.(웃음) 그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그때부터 그렇게 썼어요.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고. 그 원칙은 지금도 지켜요. ‘빈센조’를 한국에 보내버리고 수습하고.(웃음)”
―남다른 경험이 작품에 녹아 나오나 봐요. <블러드> 외에는 다 잘됐잖아요.
“<블러드>가 안되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어요. <블러드>처럼 열심히 쓴 작품이 없었어요. 불같이 썼죠. 1,2회 쓰고나서 내가 의도한 대로 나와서 정말 뿌듯했었어요. 그래서 후회는 없는데, 잘 안됐으니. 배운 건 있어요. 내가 대중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만했구나. 그 뒤부터는 프로덕션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도 신중하게 보게 됐어요. 계속 의심하고 의심하고.”
―그래서 <김과장> 때부터 소재나 작법 등이 바뀐 건가요?
“드라마가 끝나면 2주 동안 작품의 문제점을 찾아 오답 노트를 썼어요. 다음 작품에 반영했죠. <김과장> 때는 코미디도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욕망이 커서 너무 교과서적으로 썼어요. 조연의 흐름에 색깔이 모자라는 등 부족한 게 많았죠. 그래서 <열혈사제> 때는 조연의 색깔 채도를 높였어요. <열혈사제> 때 오답 노트가 가장 짧았어요.”
수치는 안좋았지만, 개인적 만족도는 높았다 작품 <블러드>.
그는 원래 ‘열공’ 하는 작가다. <빈센조>에서 악당의 정의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고 사회과학 서적을 10권 이상 읽었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정리한 뒤 그걸 다시 가볍고 쉽게 풀어냈다. 그런 다음 기획안을 썼다. ‘사단’ 같은 것도 “카르텔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송중기는 작가로서 ‘추앙’하는 배우라고 했다.
―작가는 왜 장막 뒤에 있어야 하나요?
“작가한테 스타라는 명칭만큼 안 어울리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스타가 되고 나면 주변에서 작품을 평가할 때도 솔직하게 말을 못 해요. 다 좋다고 하니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면 자아도취에 빠지는데, 작가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거죠. 누구든 ‘난 안 그래’ 그러지만 사람이라는 게 옆에서 자꾸 그러다 보면. 한 30년 정도 있다가 ‘30년 전에 송중기 나온 거 있는데, 죽이는 드라마야’라고 누군가 얘기하는 것. 작가로서 제 희망이에요.”
―시청률도 신경 쓰나요.
“댓글은 잘 안 보는데, 바닥 민심은 중요하게 봐요. 첫 방송 하면 찜질방에 가요. 티브이가 서너대 있는데, 그중 두대에서 제 드라마가 나오면 성공한 거죠. <열혈사제> <김과장> 때가 그랬어요. <빈센조> 때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봤고. 3, 4회 때는 분식점 한 열 군데 돌아요.” 그는 작품 들어가면 하루 21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의자와 분리불안이 생겨서 쉴 때도 책상에 앉아서 쉰다고 했다. 휴가를 가도 3일만 지나면 어느새 머릿속에 다음 아이템이 맴돈다. “작가를 관둬야 쉴 것 같아요.” 다른 몰두할 취미를 찾아보라고 하니, 그가 말했다. “실은 일할 때가 가장 재미있어요.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릴 때 신나요.”
한겨레 남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