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youtu.be/lEfjVzUMucY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여덟 번째 게스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이하 <사이버 지옥>)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 N번방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불꽃의 단, 기성 언론 중 처음으로 이 문제를 알린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 이렇게 네 분입니다. 5월 1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은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린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추적 다큐멘터리입니다. 작품이 공개되고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넷플릭스 뉴스레터를 보니 <사이버 지옥>이 한국 1위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최진성 감독 아시아권 관객들이 압도적인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이 발생하기 더 쉬운, 취약한 환경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사이버 지옥> 작업을 시작하신 때가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최진성 감독 2020년 3월, 넷플릭스와 한국의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논의했고, 1순위로 떠올린 게 N번방 사건이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알게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건이었음에도 넷플릭스를 통해 다뤄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불꽃의 단님은 가장 먼저 N번방 사건을 접했고, 이 사건이 알려지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단-불꽃 @56flame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정치권, 수사기관, 사법기관의 관심이 잘 쏠리지 않더라고요. 텔레그램이나 ‘N번방’, ‘박사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알려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트위터 같은 SNS에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익명의 인물들이 목소리를 냈고, 그 덕에 언론도 점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주빈이 잡힌 이후 범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공론화가 빠르게 진행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우리는 언제나 살인사건에 충격 받지만, 사실 살인은 매일 일어나거든요. 모든 살인사건에 언론이 관심을 주기는 어렵죠. 성범죄도 비슷합니다. N번방 사건을 다루면서도 우리가 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이버 지옥>에서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내가 ‘박사’의 악행을 보도하는 것이 그냥 허공을 묘사하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는 거죠. 그런 함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계속 되묻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취재하면서 피해자, 가해자 모두 접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피해자 중 미성년자도 굉장히 많은데, 당시 취재가 이뤄진 방식에 대해 들어봤으면 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그들을 접촉하기 위해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제보 받기 말고는 없거든요. 저희가 마련한 창구를 통해 피해자 분들과 그 지인들이 제보를 해주셨고, 피해자 분들이 저희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시도록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인터뷰에 나서주신다면 그걸 막아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소라넷 사건, 웹하드 카르텔 등의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행태에 실망한 분들이 계셨음에도 피해자분들이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저희에게 협조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불꽃 @56flame N번방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도 디지털 상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에 대한 언론의 이해도는 마이너스에 수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당시 추적단 불꽃에 ‘제일 끔찍한 가해 장면을 보내달라’, ‘판매가 이뤄진 성착취물을 캡쳐해 보내달라’라며 연락한 기자들도 있었어요.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 성착취의 맥락을 읽을 수 없게끔, 그냥 이런 별나고 미친놈들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말더라고요. 불꽃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쓴 이유도 그런 단편적인 보도에 지쳐서입니다. N번방, 소라넷 이전부터 이어져온 성 산업 구조를 다루고 싶었고, N번방 사건이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온 한국적 범죄라는 걸 끊임없이 말하고 싶었어요.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만들면서도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드러날 수 있는 자료, 선정적인 영상은 다 배제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거나 추상적인 드라마 컷, 인서트 컷으로 피해자 분들의 고통 묘사를 대체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희 영화가 피해자 분들께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이자 감독의 책임 있는 자세라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최진성 감독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영속적입니다. 성착취 영상의 삭제 시스템이 잘 개발된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단-불꽃 @56flame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증언할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수사기관 실무자, 여성단체 상담가 등 실제로 피해자를 만나는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맞아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범죄 근절을 위해 사법적으로 제일 중요한 건 확실하게, 엄하게 처벌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한 번도 그렇게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죠. 수사 인력이 보강돼야 하고, 전담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조주빈 세대는 10대부터 디지털 기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기기가 범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텔레그램, 트위터 등에서 일어나는 성착취가 범죄라고 인식하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단 말이죠. 몰래 사진을 찍는 것, 성착취물을 다운받아 소지하는 것 모두 범죄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학교와 집에서 가르치는 게 시작입니다.
이다혜 @d_alicante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겪은 분들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단-불꽃 @56flame 아동청소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경찰 신고, 접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삭제 지원이나 상담을 필요로 할 때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해요. 그런 상황이 허들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허들을 같이 넘어줄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시민단체에 자문도 구해보시고,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정리해서 기자에게 보내주시면 기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데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기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마지막으로 최진성 감독님, 아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을 안 보신 분들께 시청을 독려하는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통해 우리의 관심이 모여서 확장되어야 피해자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니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