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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의 딥포커스] "누구나 꿈은 꿔야 한다고. 알아?"

<허슬 앤 플로우>

한국에 상륙했던 힙합 유행어(?) 계보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스왜그(Swag), 블링블링(Bling Bling), 디스(Diss)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플렉스(Flex)까지. 처음엔 생소해도 TV 예능 자막에까지 쓰이고 나면 급속도로 유통기한 지난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조금 덜 알려진 단어가 하나 있다. 허슬(Hustle).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힙합 가사에 자주 등장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뜻을 설명하고 적용하기 어렵고 의미 자체가 다소 무겁다. 오히려 스포츠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사전에서 명사 허슬(Hustle)은 ‘소란’, ‘혼잡’, ‘야단법석’ 정도로 명시되어 있지만 보통은 좀더 동사적 의미로서 다양한 상황에 쓰인다. 허슬을 적절한 한국어로 바꿔보자면, 뭔가를 ‘열심히’ 하는 행위 그 이상의 어떤 ‘빡센’ 느낌일 수도 있고, 어쨌든 진취적인 어감이면서 ‘노력’과 ‘고행’ 사이 그 어디쯤 있는, ‘열성’보다는 뜨겁고 ‘열정’보다는 살짝 쿨한 느낌을 동반한다. 스포츠에서 선수가 과감히 몸을 던지는 극적 순간을 ‘허슬 플레이’라 하고, 도박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술을 뜻하기도 하고, 또는 장사를 할 때- 보통 마약 거래를 할 때- 은어로 쓰이기도 한다. 힙합 음악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허슬 역시 흔히 마약 거래를 뜻하지만 래퍼가 열심히 창작하고 발표하는, 그 활동으로 돈을 버는 모든 적극성을 띤 진취적 행위를 통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허슬하는 사람을 허슬러(Hustler)라고 부른다.

20대 중반에 <랩 허슬러>라는 랩 믹스테이프를 만들었는데, 지금 보면 좀 유치한 제목이지만 당시 나는 나름대로 힙한 단어를 가져와 만든 신조어라며 만족해했다. 하루에 한곡씩 즉흥적인 노래를 만들었고(래퍼들 사이에서는 이걸 ‘벙개송’이라고도 한다) 한달간 총 30곡의 노래를 완성했다. 그야말로 ‘랩 허슬러’인 셈이다. 이걸 CD에 구워서 인터넷에서 팔고 매달 반복한다면 상상하며 마치 월급을 받듯 진짜 랩으로 돈을 버는 허슬러가 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랩을 녹음한 비트들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외국 유명 인스트루멘탈이었고 당연히 허가 불가였기 때문에 나의 ‘랩 허슬러’ 생활은 한달 만에 끝이 났다. 저작권 개념에 무지했던 탓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저마다 빡세게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허슬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서 증명됐을 때 진정한 의미가 성립된다. 그저 회사 생활이 고되다고 해서 모두 다 허슬러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어느 TV 다큐에서 볼 수 있는, 밤낮없이 스리잡을 뛰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수긍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래도 뭐, 보람 있습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얼굴과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클로징)에서 진정한 허슬러는 완성된다. 영화 <허슬 앤 플로우>의 주인공 디제이(테런스 하워드)는 그것보다 더 거친 버전의 허슬을 살고 있는 하드코어 허슬러다.

멤피스 빈민가에서 낮에는 포주, 밤에는 대마초를 파는 남자 디제이. 닥치는 대로 돈을 버는 방식도, 꿈을 이뤄내는 방식도 거침없다. 3명의 매춘부를 부양하며 살아가지만, 그 부양 방식도 결국 그녀들을 착취하는 악순환이다. 미국 남부 지역의 뜨겁고 끈적한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인물들은 거의 컷마다 땀투성이다. 에어컨도 달려 있지 않은 구형 캐딜락 안, 주인공은 더운 날에 일하기 싫어하는 노라에게 그럴듯한 말로 인생을 설교하지만, 목적을 채우기 위한 임기응변일 뿐이다. 정작 자신도 그 비루한 삶의 굴레에 고립된 것을 괴로워한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지금의 내 나이셨지. 요즘 그 사실이 날 미치게 해. 이게 끝이란 생각이 든단 말이야.”

우연히 교회에서 영적인 메시지를 느낀 주인공은 좀더 의미 있는 목표를 찾기 시작하는데 바로 어릴 때 포기했던 랩 음악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본인의 거친 삶과 경험을 가사에 담아내고 성공과 꿈을 이뤄내는 것. 당연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뤄내는 게, 아니, 얻어내는 게 허슬러다.

“누구나 꿈은 꿔야 해. 누구나 꿈은 꿔야 한다고. 알아?”

그에게 허슬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 자체다. 단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허슬 앤 플로우>는 목표를 위해 어떻게든 해나가는, 그저 ‘열심히’가 아닌, 정말로 거리의 빡센 삶과 허슬을 묘사한다. 여느 힙합 장르물의 공식처럼 주인공의 ‘보여주고 증명하는’(Show and Prove) 플롯을 정석대로 밟더라도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은 바로 이 허슬 정신의 투영이다. 과정이 처절하기에 뻔한 엔딩도 짜릿함이 크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O.S.T는 <허슬 앤 플로우>가 <8마일>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힙합 음악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완성한다.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오리지널 송 부문을 수상한 노래 'It’s Hard Out Here for a Pimp'는 영화의 배경인 멤피스 스타일 사운드의 정수와 함께, 영화 줄거리를 한곡의 가사로 압축하며 주인공의 허슬 정신을 녹여냈다. 이 시대 모든 N잡 허슬러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는 없어도 단어 몇개만 바꿔본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끄덕일 수 있는 허슬 노동요다.

You know it’s hard out here for a pimp (you ain’t knowin’)

When he tryin’ to get this money for the rent (you ain’t knowin’)

For the Cadillac’s and gas money spent (you ain’t knowin’)

Because a whole lot of *itches talkin’ *hit (you ain’t knowin’)

이 동네 포주로 사는 건 빡세 (넌 모르겠지만)

월세 내는 것도 빡센데 (넌 모르겠지만)

캐딜락에 기름까지 넣고 나면 (넌 모르겠지만)

또 그놈들 헛소리까지 들어야 하니까 (넌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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