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케치북> 첫 시즌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무래도 2D애니메이션 시대의 애니메이터들이 예전처럼 많지 않은데, 그들을 우선적으로 찾다보니 기회가 조금 먼저 오지 않았나 짐작한다. <스케치북>은 이번 시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다음 시즌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에피소드 안에서 후크 선장을 그렸다. 후크 선장 캐릭터는 직접 골랐나.
= 자신에게 의미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게 됐는데, 디즈니에서 작업한 캐릭터들이 많지만 <피터 팬>과 후크 선장 캐릭터와 관련한 개인적인 히스토리가 있어서 선택했다.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것처럼 어렸을 때 <피터 팬>을 인상 깊게 봤다. 피터 팬과 친구들이 런던의 밤하늘을 나는 장면이었는데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디즈니에 입사하려고 할 때 처음 받은 과제가 후크 선장이었다.
- 과제로 그린 후크 선장과 <스케치북> 에피소드에서 그린 후크 선장이 많이 다른가.
= 20여년 전에 그린 뒤로 한번도 그린 적이 없지만 그동안 그림 실력이 늘었으니 많이 다를 것 같다. 촬영하기 전에 연습도 했다. (웃음)
- 에피소드에서 “이제 준비가 됐다”고 말하고 그림을 그리던데, 어떤 준비를 했나.
= 대략적으로 어떤 포즈를 그릴지 머릿속에 떠올리고 결정한 뒤에 그리는 편이다. 그 준비가 됐다는 이야기였다.
-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연필 사용이 거침없더라. 성격도 거침이 없나.
= 그림 스타일과 성격은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주변에서 보면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활발한 경우도 있고, 여성이 그린 그림이라고 짐작했는데 남자가 그린 경우도 있다. 어떻게 그리는지는 연습하고 훈련받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심하게 그리기보다는 러프하게 그리는 스타일로 훈련이 됐다.
- 에피소드 안에서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20년 이상 일했고 어느 정도 존경받는 위치에 올라서도 새로운 작업 앞에서는 고민이 깊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 20여년 전과 비교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건 사실이다. 약간만 나태해지면 안일하고 쉽게 가려는 생각도 순간순간 든다. 그런데 주변에서 동료들이 보여주는 결과물이나 아이디어를 보면 자극을 받아 자기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동료들이 보여주는 것만큼 동등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의무이기도 하고, 동등한 수준의 작업을 내놓지 못하면 작품의 질이 낮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매일 도전받고 자극도 받는 것 같다.
김상진 애니메이터가 디자인에 참여한 <겨울왕국> 속 엘사.
- 적록색맹이라는 한계를 딛고 애니메이터가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더 도전하려는 의지도 생겼을 것 같다.
=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이 직업을 갖기 전으로 돌아가서, 내 눈에 핸디캡이 없고 모든 색깔을 볼 수 있었다면 그래도 애니메이터가 됐을까? 지금의 내가 됐을까, 라는 생각이다. 미대에 진학하고 다른 방향으로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적록색맹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애니메이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핸디캡이 나쁘게만 적용한 건 아니구나, 행운이었구나 싶다. 물론 작업할 때 약간의 어려움도 있지만, 내가 지금 하는 작업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주변에 컬러에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많기 때문에 같이 작업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