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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7호 [인터뷰] ‘더 씨딩’ 바나비 클레이 감독, “대자연과 공동체에 늘 관심이 있다”
이유채 2023-07-05

<더 씨딩> 바나비 클레이 감독 인터뷰

일식 촬영을 위해 홀로 사막을 찾은 남자(스콧 헤이즈)의 눈에 보호자 없는 소년이 포착된다. 소년을 도와주다 한밤중에 지쳐 버린 그는 작은 집으로 내려가 집주인 여자(케이트 린 쉐일)의 호의를 받는다. 다음 날 아침, 남자는 자신이 암벽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있다는 걸 깨닫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거듭 실패한다. 곧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더 씨딩>은 데이빗 보위의 뮤직비디오 등 뮤직비디오 연출자로 명성을 쌓아온 바나비 클레이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고립된 인간이 대자연과 불가사의한 소년들에게서 느끼는 겹겹의 공포를 느리게 파고드는 호러영화다. 5분짜리 세계에서 보여준 전위적인 표현법을 내려놓고 정공법으로 영화 만들기에 도전한 바나비 클레이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 첫 장편 연출작의 씨앗은 어떻게 품게 됐나.

= 소규모의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좋아하는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1962) 같은 영화를 생각했다. <모래의 여자>는 모래 구덩이 속 집에 갇힌 남자와 그 집에 사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단일한 공간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는 구성이 흥미로웠다. 개인적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7년 전 출산을 앞둔 아내와 사막을 갔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인간이라는 존재의 취약함, 원시적인 에너지가 오래도록 잊히질 않았다. 첫 장편은 이 두 가지를 엮은 이야기여야만 했다.

- 오랜 뮤직비디오 감독 경력이 첫 장편영화 연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 물론이다. 영상 연출의 기본적인 문법에서부터 내러티브 짜는 법, 현장에서 수많은 스탭과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법 모두 뮤직비디오 연출을 하면서 배웠다. 이때 알게 된 나의 오랜 동료들이 이번 영화에도 참여했다.

- 자연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도시인, 이교도적 문화와 초자연적 현상이 내내 긴장감을 자아낸다. 최근 호러영화의 주된 경향인 ‘포크 호러’ 영화로도 읽힌다.

=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호러다 보니 포크 호러적인 요소들도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드넓고 황량한 땅을 배경으로 한 <워커바웃>(1971) 같은 호주 영화들, 포크 호러의 고전인 <위커맨>(1973)처럼 환경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을 어렸을 때부터 탐닉했기 때문에 자연과 공동체는 늘 관심 대상이다.

- 곤충, 나무 등 자연물을 다양하게 상징물로 활용하는데 그중에서도 달을 가장 핵심적으로 썼다. = 달의 순환 자체가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처럼 여겨진다는 점에서 달은 언제나 흥미롭다. 고립된 남자가 삶의 어떤 시기를 단계적으로 거치고 있다는 점을 달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8월의 철갑상어 달, 9월의 추수 달처럼 달마다 다르게 불리는 보름달의 이름들을 표기한 타이틀 카드를 일부러 넣었다.

- 남자의 파종과 여자의 임신을 병치한 것도 순환의 의미를 담은 건가.

= 그렇다. <더 씨딩>은 삶의 순환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뿌린 씨앗이 자라는 과정과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 모두 어떤 순환의 일부이지 않나. 영화에 나오듯 어디선가 사체가 썩어가고 있으면 또 어디서는 새 생명이 탄생한다. 결국은 모두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말이다. 이런 하나의 큰 사이클이 나의 오랜 관심사다.

- 자연의 광활함과 남자의 고립감이 익스트림 롱숏에 생생히 담겼다.

=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다. 미국 유타주 사막에서 촬영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압도적인 자연이 가진 공포스러움, 아름다움을 어떻게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을지 로버트 라이젤 촬영감독과 많이 의논했다. 남자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수직적 구도의 느낌을 잘 살려서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주된 대화 주제였다.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라고 안도하며 극장 밖을 나서는 관객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색과 관련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건조하면서도 뜨거운 사막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옐로우 톤을 중심으로 잡고 다른 색은 거의 빼는 식으로 작업했다. 후반에는 그들이 작고 좁은 세계에서 위축됐다는 느낌이 들도록 블루 톤을 섞기도 했다.

- 남자의 탈출을 막고 여자를 지배하는 암벽 위 존재가 소년들이라는 점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이들을 소년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 일단 어딘가에 존재하는 상위 포식자에게 먹잇감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그려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빅 팬이기도 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1954)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다. 그 작품을 보면 고립된 아이들이 교육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고 원시적으로 행동하면서 굉장히 잔인해지지 않나. 오로지 생존이 전부인 상황이 되면 누구나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이 이 세상에 진짜 있다고 믿는다.

- 배우 스콧 헤이즈는 미쳐가는 남자를, 배우 케이트 린 쉐일은 오랜 지배로 무감해진 여자를 정확히 연기한다. 소화하기 어려운 역을 맡은 두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었나.

= 3주간의 촬영 동안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리허설을 많이 하지 못 했다. 우선 찍고 결과물을 확인하는 식으로 작업했는데 신기하게 날마다 좋아졌다. 두 배우 모두 그날그날 촬영에서 느낀 고립감, 당황스러움, 체념 같은 감정을 자신의 몸에 누적시켜 카메라 앞에 서준 덕분이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잊지 않고 흡수할 것. 그것이 내가 배우들에게 준 유일한 디렉션인데, 그걸 알아서 해낸 놀라운 동료들이다.

-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끝까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들 사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둘의 관계를 마지막까지 모호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모르는 상태가 지속될수록 긴장감과 불안감은 커지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둘 사이에 애착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밝히겠다. (웃음)

- 남자는 초반에 소년을 선뜻 도울 만큼 선의를 가졌다. 끝까지 희망도 놓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일종의 벌을 주는 결말을 안긴 이유는 무엇인가.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남자는 순환론의 운명에 따라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물론 너무 암울한 것 같고,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안기지 않을까 고민도 돼 영웅적인 결말로 바꿔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영웅적 결말에 반항심이 들더라. 관객들에게 나이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결국 그대로 가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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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바나비 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