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쿠라와 마녀의> 국내 상영에 맞춰 지난해 말 ASIFA 회장 미셸 오슬로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봤다. 이런저런 작품을 하던 그는 "이 작가가 아직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특히 이번 최신작은 올해 나온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걸작이다"며 한명을 극구 칭찬했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페트로프의<노인과 바다>도 "너무나 상업적" 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미셀 오슬로가 이처럼 극찬한 작가는 누구일까?
바로 네덜란드 출신의 미하엘 두독 드 비트이다. 현재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마흔여덟살의 작가는 까탈스러운 이름만큼이나 우리들에게 무척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그동안 세 작품밖에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이미 정상급 애니메이션 작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오슬로가 '걸작' 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던 그의 최신작은 지난해 제작한 8분 30초짜리 단편 <아버지와 딸>이다.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비롯해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네덜란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등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올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페리 메이커>와 함께 후보로 올랐다.
<아버지와 딸>은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성장과정을 담담한 시각으로 그린 작품으로 , 두독 드 비트 특유의 간결하고 예쁜 그림체와 리드미컬한 카메라 워킹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필과 목탄, 컴퓨터 그래픽을 적절히 활용한 이 작품에서 감독은 대사없이 네덜란드의 사계절 풍광을 보요주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한 여인의 심성을 시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두독 드 비트 특유의 이름은 그리 친숙하지 않지만, 그를 세계에 알린 <수도사와 물고기> 를 아는 사람은 꽤 많다. 95년 발표한 <수도사와 물고기>는 안시, 히로시마, 오타와 등 각종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많은 상과 함께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다. 수도원 에서 사는 한 수도사가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낚으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수도사를 피해 물고기는 연못에서 나와 수도원 주위를 날아다니고, 그런 물고기를 수도사는 춤을 추는 듯한 동작으로 쫓아간다. 코렐리의 <라 폴리아>(La Follia)의 단아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마치 발레를 하듯 넉넉한 여백의 스크린 위를 유명하는 수도사와 물고기의 움직임은 드 자체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감동이 있다. 96년 히로시마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수도사와물고기>를 본 박재동 화백은 "꿈을 꾸는 것 같다"는 말로 작품에 대한 감동을 표현했다. 두독 드 비트의 애니메이션 심오한 철학이나 세계관 또는 톡 쏘는 재기나 익살을 발견할수는 없다. 그렇다고 페트로프나 프레데릭 벡처럼 보는 이를 오금 저리게 만드는 치열한 장인의식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너부 진하지 않고 담백해 마치 작은 잔에 담긴 맑은 차 한잔을 떠올리게 하는 투명하고 은은한 느낌. 그의 작품을 보면 신선한 산소를 마신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섬세한 그림체도 아니고 배경도 대강대강 특징만 살려 반 추상적으로 상징화했지만, 그런 영상이 "예쁘다" 는 표현밖에 달리 적절한 수식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돋보인다.
아직 올 아카데미 시상시기 발표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다. 그래야 아카데미 시상에 약한 우리 정서에 힘입어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때문이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