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새 식구가 왔다. 아기 고양이다. 원래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8살짜리 커다란 치즈태비 커크와 몸집이 더 큰 4살짜리 턱시도 스팍이다.
셋째는 우리 집에 온 지 석달됐는데 온갖 무늬와 색이 다 있는 고양이라 커크나 스팍처럼 외모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카오스와 치즈태비와 턱시도와 삼색이가 희한하게 섞여 있는 정체불명의 한국 고양이다. 추정하건대 10월에 길에서 태어나, 어느 지하상가에서 치즈태비인 남매 고양이와 함께 구조됐다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미국 SF 드라마 <스타트렉>의 열렬한 팬이라 첫째 고양이의 이름을 함장인 캡틴 커크에서 땄고, 둘째 고양이는 부함장의 이름에서 가져와 스팍이라고 붙였다. 그러나 부함장 스팍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장수하는 외계 종족인 ‘벌컨’인데, 우리 집 스팍은 이름과 달리 단순하고 해맑고 밥 많이 먹고 간식에 금세 혹하는 고양이다. 솔직히 <스타트렉>의 부함장 스팍과 너무 안 닮았다.
나는 이 경험에서 아명의 필요성을 배웠다. 어떻게 자랄지 모를 때 평생 쓸 이름을 붙이지 말자! 그래서 셋째 고양이에게는 아직 평생 쓸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으면 곤란하니 아명은 붙여두었다. 빽빽이다. 보호소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내내 큰 소리로 빽빽 울어서 붙인 이름인데, 역시나, 집에서 두어달 지낸 빽빽이는 더이상 빽빽 울지 않는다. 그러게, 크면서 달라질 줄 알았다니까. 집에 온 첫날 빽빽이의 몸무게는 460g이었다. 작고 따뜻한 몸에서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설사를 했고 곰팡이 피부병이 있었다. 작은 몸으로 사람 침대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쳐 병원에도 다녀왔다. 빽빽이는 절뚝거리면서도 집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주사기로 주는 약도 잘 먹고, 피부병 때문에 하는 약욕도 잘 견뎠다. 커크와 스팍의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밥도 열심히 먹었다.
셋째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한 것은 본격적으로 날씨가 추워지던 즈음이었다. 집에 고양이가 한 마리 정도 더 지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길에서 태어나 죽거나 다치는 고양이, 유기된 고양이, 집을 찾는 고양이들은 너무 많았다. 다 구할 순 없다 해도, 한 마리라도 더 살려 호강시키자 싶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10년 후가 두렵기도 했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커크는 올해 8살이다. 커크가 세상을 떠나고 스팍 혼자 남은 집을 생각하면 무서웠다. 고양이들이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뭐랄까, 고양이 한 마리만 남은 우리 집을 상상하니 너무 슬펐다. 그 빈 공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커크가 떠나도 고양이가 두 마리 남는다면, 넷이 함께 슬픔을 조금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멀쩡하게 건강하고 밥 잘 먹는 고양이를 보면서 미안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빽빽이를 데려오고 보니 세 번째 고양이에게 형체가 없을 때 막연히 했던 생각은 무의미했다. 행복이 커진 만큼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새 가족을 양분 삼아 몸집을 한껏 키웠다. 다른 반려인들도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을까? 나는 온 집 안을 뛰어다니는 아기 고양이를 보며 웃다가, 필연적 상실을 상상하며 어쩔 수 없이 겁에 질린다. 오늘에 머무르며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랑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