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어떤 선배가 “기자는 잘한다고 치켜세워주면 저 죽는 줄 모르고 뛰는 놈들”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내가 보기에 한국영화인들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이다.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고지를 그들은 의지와 뚝심으로 돌파해버렸다. 냉정한 사람이라면 해선 안될 일을 저질렀고, 그래서 성공했다. 20억 남짓한 돈으로 잠수함영화를 만들거나 대규모 시가지 총격전을 찍는 영화인들은 한국 밖엔 없었다. 그러느라 정두홍 무술감독 같은 사람은 몸에 볼트를 12개씩 끼우게 됐다. <씨네21>에서 강우석 감독을 ‘과욕의 승부사’로 부른 적이 있는데, 따지고보면 많은 그 호칭은 많은 한국영화인들이 나누어 가져야 맞다. 그 과욕이야말로 지난 7년간 한국영화가 이룬 경이적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그 과욕의 목표가 돈과 힘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창간 7주년 기념호라서 올해도 변함없이 한국영화산업을 움직이는 파워 50을 선정했다. 개인적으로 이 순위 작성에서 늘 흥미로운 것은 산업적 파워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순위에 올라온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올해 15위에 오른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의 미학적 가치를 대표하는 사람이지, 산업적 영향력이 큰 사람은 아니다. 대부분 한국영화를 움직이는 사람들이기도 한 선정위원들이 임권택 감독 외에도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 같은 비산업적이라고 해야 맞을 사람들을 파워맨에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국영화인들이 여전히 명예와 문화적 가치를 산업적 파워만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적 영향력를 묻는 질문에서도 명예와 문화적 가치를 빼놓을 수 없는 그 계산의 불철저함이야말로 나는 한국영화계의 대단한 미덕이며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서비스의 <취화선> 전액투자가 말해주듯이, 작가주의를 영화산업의 중심부에서 지원하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영화계는 좋은 곳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덜 오염되고, 가장 덜 불공정한 곳이며 열정과 순정한 고집과 명예율이 아직 존중되는 곳이다. 한주에 한권의 책을 만들며 심신을 혹사하고, 여전히 박봉에 시달리지만 <씨네21>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가 알에서 깨고 나와 곧바로 고공을 비행한 거짓말 같은 순간을, 그 눈부신 드라마가 특정인을 배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적 자존을 지키는 행복한 고지에 이르는 길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분투하며 드라마틱한 쾌감과 문화적 보람을 함께 느끼게 해준 한국영화인들, 영화주간지라는 유례없는 매체가 존속할 수 있도록 성원을 아끼지 않은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젠체하지도 않고 아부하느라 정신 팔지도 않는 잡지, 기꺼이 기댈 어깨를 내주지만 해야 할 말을 삼가하지 않는 좋은 친구같은 잡지가 되도록 더욱 애쓸 것임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