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아, 오랜만이야. 넌 행복하니? 갑자기 행복이라니 참 뜬금없지? 근데 사람들도 뜬금없이 행복이라는 말 잘 쓰잖아. 지금 당장 어느 고객센터라도 전화해보면 ‘행복하세요, 고객님’이라고 인사할걸? 식당의 물티슈에도, 라디오 DJ의 단골 멘트로, 하물며 연예인에게 사인을 부탁해도 흔히들 ‘행복하세요’라고 쓰잖아. 이렇게 세상 모두가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데, 난 잘 모르겠어. 행복이 뭘까? 행복하다는 게 그렇게 좋기만 한 걸까?
솔직히 행복이란 게 말이나 되긴 하니? 행복의 정의가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의 상태, 그걸 자신이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한 일이냔 말이야. 바다는 죽어가고, 숲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땅은 병들고 동물은 멸종 중이야. 대기 중엔 미세먼지가, 우리 혈관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흐르고 있어. 기후변화와 혼란은 막을 수 없는데,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는 별로 없어.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는 어떻고. 그런데 뭐라고? 행복이라고? 가장 먼저 멸종했어야 하는 단어가 행복인데 행복을 얘기하고 있다니 웃기지 않아?
그래서 난 행복이 권력이라 여겨지기도 해. 내게 가장 무서운 사람을 묻는다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거야.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자신이 온전히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무섭니, 그래서 난 행복해질 수가 없어. 얼마나 끔찍해? 행복해진다는 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한 거잖아. 이기주의의 극치. 타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집중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 세상엔 싸워야 할 것이 가득한데, 행복하면서 어떻게 싸워? 나 말고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넘어지고, 울고, 절망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웃고 있을 수가 있냐고.
있잖아. SF 작가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소설이 있어. 주인공은 행복한 뇌종양 환자야. 뇌종양과 행복이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지? 행복한 기분을 갖게 하는 호르몬을 자극하는 뇌 부위에 종양이 생겨서라나. 주인공은 머지않아 죽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아. 더 정확히는 호르몬 이상으로 절망이나 불행에 빠지지 않는 거지. 봐, 한낱 행복은 화학작용에 불과한 거야. 너라면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이를 치료해야 할지 말지를. 주인공은 결국 성공적으로 뇌종양 수술을 받고 완치되지. 하지만 곧 불행을 느끼기 시작해. 단지 행복하지 않은 것뿐인데도. 그는 마침내 다시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무조건적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제어가 가능한 상태를 얻게 되지. 하지만 행복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을 잊을 정도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돼.
OO아, 행복은 병이야. 정상 이상의 상태지. 이러니 차마 난 네가 행복하라고 기원할 수가 없어. 불행이 정상인 거야. 행복은 질병이야. 난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 행복하다면 난 슬플 거야. 불행해지자 우리. 늘 불행하자.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