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출신 감독 가운데 대중적으로 인기가 가장 높은 사람은 주세페 토르나토레다. <시네마 천국>(1988)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게 결정적인 이유다. 두 번째 장편 작품인 <시네마 천국> 덕분에 당시 32살의 시칠리아 청년은 일약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시칠리아의 시골 소년 토토가 유명 영화감독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다분히 자전적인 이 영화는 이후 토르나토레의 일관된 테마인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그린다. 소년 토토와 영사기사 알프레도(필립 누아레) 사이의 (유사)부자 관계는 토르나토레가 반복해서 그리는 부모, 자식간의 이상적인 관계다. 이건 시칠리아의 유별난 전통이기도 한데, 부모는 희생하고 자식은 그 희생에 감사하는 이야기다.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펼쳐지는 신화와 같은 공간이 바로 바게리아(Bagheria)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서 오른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바게리아는 토르나토레의 고향이기도 한데, 영화에서는 허구의 이름 ‘지안칼도’(Giancaldo)로 소개되고 있다.
토르나토레의 자전적 영화 <시네마 천국>
<시네마 천국>은 인구 5만명 정도 되는 소도시 바게리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여주기 위해, 액자 형식의 화면을 선택한다. 교회 종탑 꼭대기에 있는 네모난 공간을 액자처럼 활용해 마을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바게리아는 액자로 두른 그림처럼 보인다. 광장이 보이고, 왼편으로 이 영화의 중심이 될 ‘시네마 천국’ 극장이 있다. 소년 토토는 이곳을 마치 제 집처럼 드나들며 영화를 본다. 그곳은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이 되고, 토토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보는 영화는 전부 ‘천국의 영화’가 된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에 대한 사랑의 강렬한 표현이자, 특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이나 다름없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1947)에서 시작해 피에트로 제르미의 <법의 이름으로>(1949), 라파엘로 마타라초의 눈물을 자극하는 최루물 <사슬>(1949), 알베르토 라투아다의 <안나>(1951), 그리고 디노 리지의 <가난하지만 아름다운>(1957)에 이르기까지 전후 세계영화계의 미학을 주도한 이탈리아영화들이 마치 ‘사슬’처럼 연속으로 제시된다. 대개 문맹인 관객은 <흔들리는 대지>에서 도입부의 해설 자막을 읽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법의 이름으로>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주인공(마시모 지로티)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특히 <쓰디쓴 쌀>(1948)에서 당대 최고의 육체파 배우였던 실바나 망가노와 청춘 스타 비토리오 가스만이 키스를 하기 직전 검열 때문에 갑자기 화면이 건너뛰는 순간엔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렇듯 <시네마 천국>은 당대의 영화뿐 아니라 ‘영화관 문화’까지 기억해낸다. 시골은 영화관 자체가 드물었고, 그래서 극장 운영을 교회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가 이탈리아 사회의 곳곳에 영향력을 미쳤듯, 영화계에도 교회의 손길은 깊고 오래 이어졌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교회가 제법 많은 영화관을 소유하고 있다. 문제는 교회가 극장을 운영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검열을 실시한 점이다. 바게리아의 신부는 자신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전부 검열한다. 그가 엄격히 잘라내는 장면은 키스, 그리고 여성의 누드다. 사회에 대한 교회의 윤리적 통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바리아>의 기괴한 동상들로 유명한 빌라 팔라고니아 장면.
<바리아>, 어느 공산주의자의 삶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부친은 바게리아의 공산주의자이자 노동조합 간부였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문맹에 가까운 어른들, 이를테면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 같은 사람들은 전부 실제 부친의 분신들이다. 그의 부친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가족을 위해 시칠리아의 산속에서 목동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고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부친은 마피아를 등에 업은 시칠리아 부자들의 착취와 횡포에 맞서다 공산당에 가입했다. 마피아의 전횡에 가장 분명하게 대항하는 조직이 공산당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부친은 반자본주의자이기보다는 반마피아주의자였다. <시네마 천국>에는 과거 이탈리아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어느 공산주의자 가족은 고향에선 마피아와 부자들의 방해로 일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독일로 이민을 떠난다. 부친처럼 토르나토레 역시 공산주의자였다. 1979년 시칠리아에서 다큐멘터리작가로 일할 때, 23살의 토르나토레는 공산당 소속의 바게리아 시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가 부친 세대 공산주의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그린 작품이 <바리아>(Boaria, 2009)다. 바리아는 바게리아의 시칠리아식 표기다. 주인공의 이름 페피노는 실제로 부친의 이름이다. 곧 <시네마 천국>에 이어 다시 들려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에 관한 영화다. <바리아>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시절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3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목동 할아버지, 공산주의자 부친, 그리고 영화 지망생 아들이 그들이다(물론 그 아들은 토르나토레다). 말하자면 <바리아>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1900>(1976)에서 20세기 초·중반의 이탈리아 역사를 좌파의 시각에서 그린 것처럼, 20세기 중·후반의 역사를 역시 좌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바리아>에선 시종일관 적기가 펄럭이는데, 이 영화가 베네치아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음에도 한국에서 정식 개봉되지 못한 데는 이런 정치적 표현이 적지 않은 이유가 됐을 것이다.
<시네마 천국>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바게리아는 찬양의 대상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주변에 양들을 방목할 아름다운 산까지 갖고 있다. 바게리아가 세상에 알려진 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3>(1990)의 영향이 클 것 같다. 마이클(알 파치노)이 소유한 팔레르모 근처의 저택이 바게리아에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미국에서 양들을 방목하는 평화로운 시칠리아로 화면이 전환되는데, 그곳이 바게리아고 이 장면은 자막으로 강조돼 있다. 원래 바게리아는 아름다운 저택이 많아 ‘저택의 도시’(Cittadelle Ville)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 특히 유명한 곳이 ‘빌라 팔라고니아’(Villa Palagonia)다. <바리아>에도 등장하는데, 악마와 괴물의 동상으로 저택 주변을 장식한 곳이다. 기괴한 느낌이 드는 이 유명한 저택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1960)에도 짧게 등장한 적이 있다.
토르나토레의 주요한 작품들은 결국 ‘아버지에게 바치는’ 찬가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런 테마는 가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문화 특유의 산물이다. 아마 많은 관객이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를 다루는 ‘<대부> 시리즈’도 그렇게 읽을 것 같다. 자식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아버지의 희생에 관한 서사로 말이다. 토르나토레는 그런 문화의 산실로 시칠리아를, 특히 자신의 고향 바게리아를 강조하고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바게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이 ‘이상적인 부친상’을 빚어내는 신화의 땅으로 비쳐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