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까, 말까? 몇년 동안 갈등하게 만든 밉상의 가전제품, 에어컨. 어느새 가구 보급률이 80%에 육박한다지만 쉽게 들여놓지 못하는 가난이 그 갈등의 첫째 요인이다. 또 전기요금 폭탄 맞을까봐 마음대로 켜지도 못한다는 주위의 볼멘소리도 발목을 잡는다. 거기에다 생태주의적 소신이랄까, 가뜩이나 온실가스를 증가시키는 에어컨 냉매를 하나라도 줄이고픈 소박한 고집이랄까. 중고 에어컨을 달아주겠다는 주인집 친절에도, 시나리오를 빨리 쓰게 하려고 에어컨을 달자는 프로듀서의 사악한 꾐에도 손사래를 쳐왔다.
하지만 폭염 앞에 장사 없나 보다. ‘지구촌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는 지난해 기록을 가볍에 제쳐버린 올해의 이 기록적인 폭염 앞에서 소신이 빙하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선풍기도 춥다던 시골집 노모는 마침내 에어컨을 켰다며 배신을 선언했고, 전기세 10원도 아까워하던 알뜰의 여왕인 막내 여동생마저 항복하고 에어컨을 장만했단다. 서울에 노란 망고만 화룡점정처럼 열리면 딱 아열대 지역의 풍모를 갖추고도 남을 고온다습의 나날. 살까, 말까? 고뇌의 주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어느덧 에어컨은 이렇게 생존품이 되었다. 1920년대 처음으로 에어컨이 극장에 설치되면서 영화산업 부흥을 견인해냈듯, 홍콩,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같은 더운 도시들이 에어컨을 동력 삼아 발전했듯, 에어컨은 도시와 삶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테크놀로지다. 누진제를 포위한 채 에어컨을 연호하는 한국 시민들의 격렬한 아우성이야말로 급변하는 ‘기후 위기’를 상징하는 첫 번째 풍경일 것이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머잖아 한반도는 열대 과일나무들이 점령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누진제 개혁으로 폭염에 에어컨 좀 펑펑 틀게 하자는 시민들 항의는 당연한 요청일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에어컨의 역설이 더 뜨겁다. 에어컨을 이대로 일제히 켜면 더위는 더 가속화될 것이고,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것이고, 봄철마다 더 광폭해진 미세먼지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더위와 미세먼지를 쫓기 위해 에어컨을 더 켜댈 것이고. 전자레인지 속 팝콘처럼 모든 것이 한꺼번에 튀겨지는 아이러니.
에어컨이 던져주는 시대적 역설이다. 누진제 개혁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에어컨 좀 실컷 켜고 싶다는 외침들은 다급한 생존의 요청임에도, 미래의 생존을 인질 삼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우리는 기후 어젠다를 정치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폭염이 곧 정치라는 인식의 전환. 단기적으론 누진제와 전기요금 체제를 개편해야겠지만 지구와 우리네 삶터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논의들을 시급히 펼쳐놓아야 할 것이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녹지 조성, 에너지 빈곤층 문제 등 갈 길이 멀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한가롭게 강 건너 불 구경 취급하는 사이, 어느새 눈앞까지 시뻘겋게 치고 들어온 생존의 문제다. 내년, 내후년, 앞으로 여름은 더욱 흉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