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제임스 딘의 이 이야기를 전주국제영화제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변기 앞에서 만났다. 차가 많이 막혀서 너무 늦게 휴게소에 들렀던 관계로, 문장 속 ‘살’이 ‘쌀’로 보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기억했다. 이후 서울로 와서 <곡성>을 보고난 뒤 저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나홍진, 이 사람은 매번 진짜 이번 영화 만들고 죽을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구나. <황해>를 준비하며 중국 연변 지역으로 떠난다는 그를 만났을 때(아마도 그때는 <추격자>의 영향 때문인지 <황해>가 ‘살인자’라는 제목을 갖고 있던 때였다) 그는 ‘그냥 간다’고 했다. 한동안 글 쓰고 생활하면서 그쪽 동네의 기운을 느껴보고 돌아오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 특유의 ‘취재’ 방식이라 할 것이다. 장영엽 기자가 인터뷰한 이번호 기사를 봐도, <곡성>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토속신앙을 연구하기 위해 어느 산속 암자에 한두달 가까이 틀어박혀서 무당들과 지냈다고 한다. 그 인터뷰에서 역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장소의 기운’이다. 그가 언제나 ‘장르’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마다 느껴지는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점성(粘性)은 거기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괜히 기억나는 장면은 두 가지다. 흔히 우리가 ‘낚시’니 ‘떡밥’이니 하면서 은유적으로 쓰는 표현을 아예 첫 장면부터 보여준다. 정말로 낚싯바늘에 지렁이 미끼를 끼워서 던진다. 생각해보면 나홍진의 영화가 그렇다. 떡밥에 관심 없으면 상관없지만 일단 덥석 물면 달아나든지 잡히든지 둘 중 하나를 힘겹게 택해야 한다. 다음은 벼락 맞는 장면이다. 내게 가장 웃긴 장면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곡성>에는 은근히 웃긴 장면들이 많다. 알려졌다시피 <곡성>은 해 뜨기를 기다려 해 뜨는 장면을 찍고 비 오기를 기다려 비 오는 장면을 찍은 영화다. 그런 고집스런 사실성을 추구한 영화 안에서 감독은 기어이 CG로, 어떻게 연출해도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에라, 이 벼락 맞을 놈아!’라는 그 오랜 말씀) 그 벼락 맞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그처럼 <곡성>은 이래저래 가슴 깊이 훅 들어온 영화였다.
아무튼 현재 시점까진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와 해외영화를 하루 차이로 만났다. 바로 지난주 화요일에 본 <곡성>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요일에 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다. 오늘 죽을 것처럼 만든 영화가 <곡성>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는 영화가 <해피 아워>다. 일단 두 영화 모두 길다. <곡성>은 2시간36분, <해피 아워>는 무려 5시간17분이다. 그런데 두 영화는 별다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아예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은 상극의 영화다. <곡성>이 나홍진 감독 특유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안에서 초현실을 탐구하는 영화라면, <해피 아워>는 30대 후반 네 여자의 삶을 일정 기간 뚝 떼서 보여주는 초사실주의 영화다. 실제로 후자는 연기 워크숍에서 만난 네 주인공의 교류 속에서 이야기가 생성된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해피 아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와 인터뷰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특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영시간의 한계를 딛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가 생기길 소망한다. 모처럼 영화로 큰 자극을 받은,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은 기분을 느낀 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