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이창’을 쓰기 시작한 조선희 전편집장이 항의문을 보내왔다. 16군데를 고치다니, 왜 그랬는가. 왜 ‘쥐도 개도’를 ‘개나 소나’로 고쳤는가. 그런 내용이었다. 구두점 하나도 이리 찍어보고 저리 찍어보면서 제자리를 찾아주려고 고심하는 글쟁이에게 그건 너무 정당한 항변이었다. 첫 장편을 아직 출간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소설가다.
우리 인터넷 사이트에 <씨네21>에 실린 글 중에 어법이 맞지 않는 대목을 골라 지적한 글이 몇편 올랐다. 한사람이 썼는데, 틀린 지적이 없다. 아마 그도 소설가일지 모른다.
이번호 특집 거리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박찬욱 감독은 감독이기 이전에 글쟁이였고 예리한 평론가였다. 그의 저서 <비디오드롬…>은 1990년대 초반 영화광들이 탐독한 책이었다. 지금은 감독만 한다. 박찬욱, 김지운, 민규동, 장진 감독은 글로 먹고 사는 왠만한 사람들보다 글을 더 잘 쓴다. 실제로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전업 소설가였다가 뛰어난 감독이 된 이창동 감독도 있다.
김훈씨가 첫 글을 팩스로 보내왔다. 그 글은 원고지에 씌어있었다. 5년만에 원고지에 씌어진 글을 만났다. 아, 원고지가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읽었다. 청탁한 분량 11매를 정확히 채운 그 글은 이렇게 끝맺었다. “ …늙은 글쟁이는 비통했다. 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처럼 어려워야 하는가.” 그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산문가 가운데 한사람이며 소설가다. (이번주부터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쓰는 김훈씨는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었고, 기자 경력 30년에다 시사주간지 편집국장까지 역임했는데, 기자 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들이 하는 경찰 출입기자를 하고 싶다며 지난 2월에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특이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말과 글로 판단하건대 말과 글을 진심으로 아끼고 신뢰하는 드문 사람이다.)
반성하는 일주일이었습니다. 원고지가 살아있듯 말도 글도 영화도 살아있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좋은 봄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