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난 얘기지만 지난 2월22일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종영했다. 마지막회는 박정수가 암에 걸려 가족들이 모두 슬픔에 빠져있다 결국 박정수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약간 밝은 후일담이 덧붙긴 하지만 시트콤 마지막회에서 중심인물이 갑자기 죽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PD를 빼고는 이런 결말을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마지막회가 방영된 건 금요일 밤 9시반. 보통은 마감하느라 모두 정신이 빠져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약속한듯 하나둘씩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고백하자면, 나를 포함한 <씨네21> 식구들은 김병욱 PD의 팬이다. 우리는 <순풍산부인과>를 사랑했다. 지금은 퇴사해 TV평을 쓰는 구둘래는 <순풍…>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500회 때는 <순풍…> 특집도 마련했다.(TV 프로그램 하나로 특집을 꾸민 건 이때가 처음이다). 끝난지 오래지만 케이블채널을 돌리다 <순풍…>을 만나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어김없이 든다. 만일 <순풍산부인과>를 하루종일 하는 유료채널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신청하고 싶다.
<순풍…>만큼은 아니었지만, <웬만해선…>에서도 김병욱 PD를 느끼고 좋아했다. <웬만해선…>의 마지막회를 보는 건 그래서 친구를 멀리 보내는 느낌과 비슷했다. 박정수는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흩어져서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김민정(<버스, 정류장>의 바로 그녀)의 내레이션과 함께 묵은 앨범의 장면들처럼 소개된다. 거의 끝나갈 무렵 눈물 많은 백은하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나도 코끝이 시렸다. 이 마지막회는 상식 밖이 아니었다. <웬만해선…>다웠고 김병욱다웠다. 이 벗은 웃겼지만 늘 어딘가에 슬픈 느낌을 묻어두고 있었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도 무지 재미있지만(그 대사 치고 받기의 타이밍은 가히 예술의 경지다), <순풍…>이나 <웬만해선…>을 볼 때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더 허술하지만 더 따뜻하고 애틋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대중문화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건 고도의 예술이 되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대중매체도 글도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매체나 좋은 글은 교사가 아니라 친구에 가깝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그런 친구는 많지 않으며 곁에 있을 땐 잘 모른다. 그러다 떠난다. 지난주 김봉석이 쓴 마지막 ‘이창’에서(다음주부터는 조선희 전편집장이 신경숙씨와 번갈아 쓴다) 뭉클했던 건 본문이 아니라 “험난하고 피곤한 세상, 되도록 즐겁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인삿말이었다. 그 말은 묘하게 <순풍…>이나 <웬만해선…>을 생각나게 했다. <씨네21>도 그런 친구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